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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가사로 보는 오페라, 막장 드라마!
  • 우주호
  • 17,820원 (10%990)
  • 2025-01-15
  • : 190
서양 음악은 재즈, 블루스, 포크송 등 분야를 막론하고 고전 명곡이란 걸 들어 보면 선율의 아름다움, 빼어난 형식미와 대조되게 그 가사(있는 경우)가 아주 저속하거나 끔찍한 내용을 담은 게 제법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곡 자체와 가사를 대조시켜야 곡의 아름다움이 더 부각된다고 여겨 온 듯합니다. 반면 한국은 곡에 어울리게 가사도 점잖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입니다. 악장 문학을 가사로 삼은 궁중 음악, "명월이 천산만락에 아니 비친 데 없다"로 끝나는 <관동별곡> 등 엄숙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우리들이라서 유명 오페라의 대본을 막상 확인하면 그 저질스러운 극 전개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오히려 더 재미있어하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주호 교수님이 쓰신 이 책은 스핀토 테너 백인태씨와의 가상 대담 형식으로 쓰여서 저 같은 문외한인 독자가 읽기 편합니다. 모두 열 편의 오페라가 소개되는데 각 장 앞마다 "작가: 이윤이"라는 문구가 있어 무슨 뜻이지 했었습니다. 장 앞마다 실린 모노톤 일러스트를 그린 분이며 우주호 교수의 부인이기도 한 소프라노 이윤이 교수를 가리킨다는 걸 머리말을 다시 읽고 알았습니다. p45 중간쯤에 보면 <오텔로>의 악역 이야고(우주호 교수의 "출세작 배역"이기도 한)를 두고 "미워 죽겠다"고 하셨다는 바로 그분입니다. 이 책 뒷날개를 보면 이윤이 교수가 쓰신(직접 그리신 그림도 함께 실린) 오페라 책도 따로 있는 듯합니다. 

장 앞에는 일러스트(포스터?) 하단에 오페라 감상 포인트가 요약되었는데 이 대목에서도 저자의 재치가 드러납니다. p2의 일러두기를 보면 "인명 지명 오페라 용어들의 경우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으나 저자의 뜻에 따라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하기도 했다"고 나오는데 사실 제가 읽어 보니 전자의 예는 좀 드물고 후자의 예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오셀로도 베르디의 오페라 제목일 때는 "오텔로"라 표기되는데 이건 이탈리아어로는 Otello라서 외래어표기법에 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쥬셉뻬 베르디(p44)" 등의 표기에서는 이 책의 개성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오페라는 가사가 붙은 아리아로 이뤄지므로 현지어의 발음이 존중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며, 저는 개인적으로 이편이 훨씬 좋습니다. 

모든 챕터가 어려운 말 하나 없이 구수하게 솔직하게 설명되므로 다 재미있지만 저는 특히 2장에서 다뤄지는 베르디의 오텔로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도 희곡의 무대는 베니스 공화국이며 유독 베르디 오페라에서 베네치아로 새로 각색된 건 아닙니다. 반면 3장의 주제인, 같은 작곡가의 작품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제목, 배경, 주인공 이름들이 모조리 프랑스식에서 바뀌어 이탈리아식으로 현지화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상연될 때 일본식을 따라 "춘희"라고 이름붙였다고 하셔서 "음, 뒤마 피스의 원작도 제목이 동백꽃의 아가씨인데, 나중에 후기 쓸 때 아는척 좀 해야겠군"이라고 생각했는데 p93 이하에서 그 이야기까지 저자께서 다 해 주십니다. 음악적 요소 외에도 이런 인문 배경까지 자세히 나와서 더욱 유익한 책입니다. 

"간단한 것을 특별하게 사용하는 능력(p64)" 레치타티보 이중창을 <오텔로>에서 베르디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두고 저자가 쓴 표현입니다. 이런 게 천재들의 놀라운 재능 그 본질입니다. 저자께서 큰 애정을 둔 작품이어서인지 이 챕터의 설명은 특히나 최고였습니다. 이아고는 이탈리아식이라면 자코모로 불려야 맞는데 무슨 까닭인지 원작자 셰익스피어부터가 이름을 이렇게 스페인식으로 붙였습니다. 사실 무어인들도 이탈리아 여러 나라들보다는 스페인하고 자주 엮였기 때문에 원작자의 이런 세팅 동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데스데모나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이름인데 앞의 "데스"가 어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근이며 난독증이라고 할 때 dyslexia의 dys-와 같은 계열입니다. 

p160 이하에 <리골렛또>가 소개되는데 이 역시도 베르디의 작품입니다. 저자께서는 oo마트 TV 광고 음악으로 소개되었다고 하시는데 사실 이 곡은 그게 아니라도 한국인들이 무척 좋아하긴 했죠. 아무튼 그렇게 기억을 살려 주시니 독자들이 더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습니다. "La donna e moblie"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로 우리에겐 예전부터 알려졌는데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여자(의 사랑)는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여자가 갈대 같다고 한 사람은 19세기 영국의 신학자 리처드 웨이틀리입니다. 

제목엔 막장드라마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나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행간에 저자의 오페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 배어나는 게 독자에게 바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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