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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 : 제도적 측면
  • 이동수 엮음
  • 25,650원 (5%810)
  • 2024-04-10
두 달여 전인 2월 12일에 다층적 통치성 총서 제6권, 정책적 측면 편을 리뷰했었습니다. 이 5권이 조금 뒤에 출간되었는데, 사실 독자로서 약간 의아하기도 했으나 여튼 당초의 계획대로, 체계를 잡아 계속 출간되는 모습에 매우 안도가 됩니다. 계속하여 힘들면서도 뜻 깊은 작업을 이어 주시는 이동수 교수님, 그리고 인간사랑 출판사 측, 특히 여국동 대표님과 이국재 부장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정치학 서적들을 읽어 보면 한국의 정치학이 이제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한국어로 된 정치학 전문서 중 읽을 만한 게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은 한스 모겐소나 조셉 나이 등의 원서를 힘들여 짚어 나가야만 했습니다. 영어로 된 전문서 중 가장 문장의 난도가 높은 분야가 신학, 정치학 등입니다. 이제 한국 학자들의 유려하고 심도 있는 문장으로 정치학 이론의 높은 경지를 엿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너무도 큰 기쁨입니다. 

중근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국세가 극성(極盛)에 달했을 때 세계 최강의 군대는 합스부르크의 심장 빈을 포위했었습니다. 이때 빈이 함락되었다면 그 여파로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은 모두 무산되거나 심각하게 지연되었겠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유럽발 혁신과 진보 요소가 상당 부분 거세된, 여전히 중세를 닮은 답답한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때 투르크의 빈 포위를 방해하여 결정적인 도움을 합스부르크에 준 쪽이 폴란드 군대였는데, 이 나라의 융성함과 활기참이 이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나라가 불과 백 년도 안 되어 자신이 은혜를 끼친 오스트리아 등 세 열강에 의해 분할되어 정치적 단위가 지도에서 사라진 비참한 운명을 맞았는데, p15를 보면 이동수 교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1989년 <역사의 종언>을 논하여 크개 유명해졌던)의 "실패한 과두제" 이론을 들어 왜 폴란드 같은 나라가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 못했는지를 분석합니다. 논문 중반에 나오는 헝가리도 한때 마찬가지였으나 여튼 19세기에 이른바 Ausgleich 등 대타협을 합스부르크 측과 이뤄 중흥을 도모했습니다. 논문에 나오듯이 헝가리는 한때 투르크에 의해 망했고,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속국 신세가 되었으나 지도층이 적절한 타협책을 펴서 민족 말살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 높은 수준의 자치를 수백 년 간 유지했습니다. 

북유럽의 스웨덴 역시 본디는 부족 사회에 불과했고, 30년 전쟁 당시 유럽 본토에까지 군사적 영향력을 끼쳐 제국으로 성장하는 듯했으나 막판에 일격을 맞았고, 이어 표트르 대제와의 긴 전쟁에서 기어이 패배하여 국가 차원의 위기를 맞았으나 지도층이 지혜를 발휘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산업적 격변기에도 잘 대처하여 경제적 풍요를 유지한 게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왕-귀족-평민 세력이 결국은 제도적 타협을 통해 절멸의 투쟁으로 치닫지 않은 게 생존을 위한 그들의 슬기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듯 덴마크는 한때 전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든 강국이었으나 스웨덴이 독립해 나간 후에는 오히려 그로부터 존립의 위협을 당했으며, 남으로부터 프로이센이 치고올라오고부터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뺏기는 등 나라가 완전히 기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내부부터 추스려 제도적 안정을 이루고 본연의 강점인 낙농업을 정비하며 무역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키우는 등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한 끝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불안 요인 없는 나라를 유지해 갑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자포자기 상태로 극단 폭주하지 않고 자제하며 나머지 자산을 잘 추린 게 생존 번영의 비결입니다. 

헌법에서는 이미 헌정사 초기부터 지자제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그 실행이 대단히 느려서 아직은 한국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편입니다. 김태영 교수는 p75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지방정부 집행부만" 지방자치단체로 파악하는 오류가 만연하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신문 방송에서의 사용례를 봐도, 지자체라고 하면 집행부만을 가리키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광의의 정부에 입법부인 국회가 포함되는 것처럼, 지자체도 지방의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당연하며, 거꾸로 영미에서는 local council=지방의회=지자체로 이해하는 관행마저 있다고 합니다. 왜 집행부보다 의회가 우선하는지에 대해, 김태영 교수는 왕권에 대항하여 오랜 동안 민의를 관철하는 수단이 의회였던 그들 역사 고유의 특징 때문이라고 추론합니다. 

예전에 동사무소라 불리던 기관이 지금은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로 바뀌어 호칭됩니다. 이 배경에는 지방자치가 읍면동 수준에까지 정착되어야 한다는 1998년 정부 이후의 기조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p123). 3년 전인 2021년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소속의 한병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신설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단까지 관철하려는 시도를 했었으나, 특정 정치인에 의해 사조직화하여 악용될 우려 때문에 좌초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 채진원 교수는 해당 법안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며, 주민이 아니라 위원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p127)이 주민 자치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관제화의 위험이 다분하다며 그 모순을 통박합니다. 

조석주 교수는 한국 정치의 제도화와 자율성 사이에 큰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규정하며, 한국 정치의 균열은 첫째 이제는 보수-진보의 일차원으로 설명되지 않고 젠더, 계급, 안보 이슈에 따라 다차원의 동인을 가지며, 둘째 일어난 균열이 한 모습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고 그 균열상이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동적(dynamic)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지적합니다. 51%의 승리, 49%의 패배로 언제나 소모적으로 귀착되는 선거를 지양하고, 다당제가 정착함으로써 (정파 간 수시 이합집산에 따라)선거에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3의 길"을 설파했고 우리 나라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여러 정치 실험을 시도했는데 이 책의 6장에서 임상헌 교수가 분석하는 연계 정부, joined-up government입니다. 부처 할거주의를 극복하고, 연계 유닛을 설치하며(한국에도 국무조정실 같은 게 있기는 합니다), 결정뿐 아니라 정책의 집행 단계에서도 연계성이 담보되도록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계유닛이 분절화하며 오히려 통합 조정이 더 힘들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신 노동당을 표방했던 블레어의 실험이 꼭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유익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까지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화용 교수, 이기호 팀장 공저의 마지막 8장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룹니다. 이주는 짧은 시간에 한국이 워낙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바람에 일어난 현상인데, 출생률까지 급감한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역할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위치에까지 가까워졌습니다. 두 필자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익과 고용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그들을 제도 내로 단단하게 통합하고 산업의 체질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주는 이미 21세기 들어 전지구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국민국가의 낡은 굴레를 넘어 화합과 포용, 구조연결을 기해야만 이 격변 속에서 살아남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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