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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꿈으로 갈게
  • 임태운
  • 15,120원 (10%840)
  • 2024-03-25
  • : 370
다 읽고 나서, 정말 기발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활약과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반전, 배후에 깔린 감동적인 주제 같은 건 둘째치고라도 일단 소재부터가 너무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물론 악몽도 곧잘 꾸지만, 어쩌다가 달콤한 꿈, 평소에 좀 이뤄졌으면 하는 바가 그대로 투영된 꿈을 혹 꾸기라도 하면 깨기가 아쉽고(이 과정에서 자각몽이란 것도 체험합니다), 깨고 나서도 그 줄거리를 억지로 되새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겪어 봤을 경험을 장대한 소설로 만들어서 그 안에 심오한 주제까지 담아낸 작가님의 역량이 너무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누구의 꿈에 다른 사람이 참여하거나 하나의 꿈을 모두가 공유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고 한 작가의 말씀을 읽고 나니 소설의 울림이 더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분량이 긴데 이 정도로 재미를 내내 유지하는 게 정말 쉽지 않기에, 읽으면서 소설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니 남의 꿈에 침투하여 어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럴 때에는 공권력이나 그 유사한 인력이 어쩔수없이 투입되어 공정한 상태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팀장 황수현은 성지후에게 어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며 진짜 숨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추궁합니다(p46). 그러나 몽주(夢主)인 지후도 그 정도의 공격에 곧바로 무너지고 모든 걸 털어놓을 만큼 허술한 내면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거리 끝에 지후는 수현이 괜히 지금 이 정도 자리에 있게 된 됨됨이가 아님도 확실히 깨닫습니다. 동시에 지후 자신과 수현이 의외로 많은 걸 공유하는 처지임도 눈치챕니다. 이 소설에서 꿈, 즉 남들이 꿈는 무대에서 우리들이 참여하여 모험을 즐기는 모습은 현대 게임 산업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어떤 꿈에서는 공간 이동이 자유롭고 때로 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들은 심지어 꿈에서조차 별 힘을 못 쓰고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한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만, 지후는 큰 전신주를 마치 수수깡처럼 뽑아올려 휘두르고(p41), 빈민가에서 온갖 동물로 변신하여 지후를 괴롭혀 온 예니도 마침내 그 무기력한 실체를 드러내고 포기하게 됩니다. 1970년대 SF 영화 <슈퍼맨>을 보면 조드 장군 등 우주를 떠돌다 운 좋게 지구에 착륙한 이들이, 이 행성에서만큼은 자신들이 물리 한계를 넘어선 초능력자들이 되어 있음을 알고 스스로도 놀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여러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부터 능력자들이었다면 능력 발휘가 당연할 뿐 스스로 신기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능력에 걸맞은 자제력, 감정적 적응 따위가 아직 안 갖춰졌다는 뜻이며 경우에 따라 큰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황수현 등은 이 점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명언이 나오죠. 

꿈에 자주 나오는 모든 형상은, 내 마음, 내 무의식 중에 남아 있는 어떤 감정, 상처, 강박, 열등감, 트라우마 같은 걸 상징합니다. p170을 보면 지후는 자신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얼룩말에 대해 때늦은 설명을 하는데, "마치 나를 둘러싼 전체 세계와 싸우는 느낌이었다"며 익숙한 무기력감을 고백하고 또 동료들에게 사과합니다(미리 몽주가 설명을 해 줘야 남의 꿈에 들어와 생고생하는 팀원들의 수고가 덜어지므로). 이 소설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성숙, 훈련 같은 말들입니다. 마뜩지 않은 꿈이 자주 꾸어지는 건 그 당사자(이 소설에서라면 몽주)가 과거의 체험에서 모종의 상처를 입었고, 아직 그것으로부터 아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남의 심리나 정신적 성숙도를 잘 알아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텐데, 이걸 보면 여기 몽재진압반 팀원들은 나이는 어려도 참 지능이 높고 정신분석학 전문가 못지 않게 성숙한 이들입니다. 

용꿈은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길하게 여겨졌으나 서양에서 dragon은 그저 인간의 앞길을 가로막는 흉물, 악의 상징일 뿐입니다. 새로운 꿈 안에 들어와, 감당이 힘든 어떤 용을 마주한 팀원들은 이 꿈이 악몽, 비극(p216)으로 마무리되리라는 직감에 몸을 떱니다. 수현은 이 와중에도 자신의 소신을 안 바꾸는 확고한 리더의 결기를 보이는데 뭐 어느 조직이건 우두머리가 이 정도 강단이 있어야 합니다. 드림캐스터 오재욱 박사가 확실히 정교하게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예니의 꿈 캐스팅 중 "트라우마 수치가 적정선을 초과했으므로 업로드할 수 없다"는 메시지(p257)가 적절하게도 드림넷에 뜹니다. 그러나 우리가 봐 왔듯 예니도 결코 단번에 의지를 꺾을 호락호락한 애가 아닙니다.  

최장순 조사관과의 대화를 통해 그간 숨었던 내력이 더 자세하게 드러나고 팀장 수현은 마침내 자신의 부친인 황 회장과 살벌한 대면(p372)을 합니다. 모든 자녀는 이처럼, 어떤 신적인 아버지의 존재를 극복하고 비로소 독립적인 영혼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붙잡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지옥이 꼭 지옥이 아닐 수도 있지(p395)." 드디어 팀원들과 수키는 남편이기도 했던 오 박사를 만나며(p460),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 나온 진실들은 너무도 충격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나오듯, 인간 존엄의 극치는 절망적인 운명의 파국을 빤히 맞이하고도 그를 용감히 맞서는 데서 드러납니다. 인간은 본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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