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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중국의 조용한 침공
  • 클라이브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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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4
  • : 1,636

1980년대 중국은 그 전 시기 마오 주석이 빚은 광범위한 실책의 폐허 위에서 조용히 실력을 닦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도광양회라는 말을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하게 만든 게 덩샤오핑이 걸은 그 당시의 노선이었습니다.

2012년 중국 주석으로 뽑힌 시진핑은 그전과는 달리,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이를 구체화한 정책을 실제로 펼쳤습니다. "중국몽"이라는 단어는 예비역 대령이자 군사학 교수(p45)인 류밍푸의 한 베스트셀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언제든 거침 없이 싸울 준비가 된 사자의 우두머리가 바로 시진핑이다." 그의 말입니다.

이들의 전략은 공연한 군비 대결에 힘을 빼지 않고, 경제적 실리를 차근차근 다져 기존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과거 미-소 양국이 냉전을 펼칠 때는, 미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련과 무한 군비 경쟁을 펼치다가 저유가 쇼크를 견디지 못한 소련이 나가떨어짐으로 해서 결말이 났었습니다. 중국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군비 확충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데(p47), 어쩌다 뉴스에 중국산 최신 미사일이나 항모 건조 소식 같은 게 들리면 세계는 긴장하게 됩니다. 여튼 구 소련과는 이처럼 전략 방향성이 다르므로 아직은, 예컨대 함대의 전력 같은 게 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며, 이 때문에 푸틴의 러시아와 부분적으로 협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여튼 전략가인 류밍푸(劉命福)는 화평굴기, 즉 비군사적 수단으로 세계 지배를 추구하겠다는 건데 이를 위해 그는 "중국의 전통적 가치"라든가 중국식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퍼뜨려 현재 미국의 그것이 가지는 지위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폴 키팅 호주 총리 같은 이는 저자가 "중국의 대외 선전에 넘어간 고위 인사"로 평가하는데, 키팅 전 총리의 말은 "중국은 구 소련과 달리 국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애 쓰는 나라가 아니며,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무는 나라"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중국이 품는 야욕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중국은 대체로 동아시아 일대를 "천하"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 패권자로 군림하려 들었지,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애써 무관심하려 했으며 그래서 특히 명나라의 대외 정책은 영락제 이후로는 쇄국 정책으로 평가 받았던 것입니다. 로마나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아바스 등)이 얼마나 팽창적이었는지와는 대조되죠. 문제는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중국이 자신의 영역으로 여겨 온 범위에 포함이 된다는 겁니다.

후진타오는 주석 재임 시절 적어도 현재의 시진핑보다는 훨씬 온건한 노선이었다고 여겨지지만 2003년 그가 호주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보면 명 영락제 시절 정화의 원정 당시 멀리 태평양을 건너 호주에까지 중국인들이 도착하여 문명을 일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p52).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충격적이긴 합니다.

사실 더 충격인 건, 이 무렵에 벌써 호주 국민들은 중국이 자신들과 역사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며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최근까지도 계속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폴 키팅이 총리가 된 것도 저 후 주석의 발언보다 더 뒤의 기간입니다. 그래도 한국은 중국 측의 "동북 공정" 소식이 들리자마자 종전의 우호적 분위기가 돌변했었고 이게 벌써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중국은 사실 호주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간 동양인과 비슷한 외모 특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득한 옛날 용감한 중국인 몇이 태평양을 건너가 북미에 자리한 후손이라고까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플로그룹의 연구를 통해 시베리아에서 코카서스 인종과 동아시아 일부(중국인인지 몽골인인지 한국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가 혼혈이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로 이주한 걸로 밝혀졌습니다.

"중국인협회 연합은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중에도 조국의 위엄과 이익을 잊지 않을 것이며, 반중 단체와 반중 활동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모임을 조직한다....(p67)." 이상은 호주 멜버른의 어느 중국인 단체가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그들의 목표이며, 이 정도쯤 되면 이 단체가 호주 재중 교포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그를 넘어 중국 정부의 간첩 노릇을 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꽤 오래 전 대만과 홍콩의 독자적인 노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한국의 서울에서 중국 대학생(유학생)들이 공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해 무엇이 이로운 방향인지 주장하거나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표현 방법이 폭력을 타인에게 행사하는 식이 되어서는 당연히 안 되며 이런 행동이 타국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이뤄진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p71에는 "중국 민족이 아니라 중국 인종이라는 표현을 써야 옳다"는 말도 나옵니다(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이익을 거리낌없이 무시할 수 있다고 밝히는 점도 놀랍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도 금기시되는 "인종"의 명분과 범주화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놀랍습니다. p144를 보면 이미 1989년 천안문 사건(며칠 전 32주년이 지났습니다) 직후에 "민주화 운동 참여"를 목적으로 호주에 건너온 양동동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은 비자만 받고 나서 이후 전혀 민주화운동에 간여치 않고 거꾸로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열중했다고 나옵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말과 명분을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것도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기자는 언제 어디서건 진실을 독자에게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통신의 경우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의 가치를 터득해야 한다"는 규범을 따르는 기관이라고 나옵니다(p168). 그러나 문제는 중국의 기자와 언론인뿐이 아닙니다. 호주의 중견 언론인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하는 이들은 중국 현지에 초청 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고 "감동받아" "한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결코 경험하지 못할 중국의 멋진 점심을 즐길 것"이라며 아마도 자신들 호주인들 역시 하루빨리 중국몽에 동참해야 할 것임을 촉구하는 듯한 주장을 합니다. 소름이 끼치지만 이게 어디 호주 언론인들의 처지에 한정되는 이야기겠습니까? 한국 기자도 이런 "대접"을 받고 "감동"을 받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뭐 이 와중에도 "숨어 있는 1984(조지 오웰의 소설)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이도 있고, 언젠가는 저들 중국인들이 호주의 "귀싸대기를 날릴 것"을 예견하는 이도 있습니다. 애초에 의도가 불불명한 대접을 받고 자신의 영혼을 더립히는 일 자체가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p199에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어디까지나 이는 중국 정부가 깊이 개입하거나 주도하는 관영 사업이며, 개인이 다른 나라 다른 사업가들과 동등한 레벨에서 참여하거나 개인 수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와 같게 취급될 수 없습니다. 호주는 사실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그간 이익을 본 바도 적지 않으므로, 예컨대 남중국해 사안에 대해 호주가 다른 목소리라도 내면 배은망덕하다거나, 심지어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중국 네티즌도 있다고 합니다(p211). "야만"의 표준과 잣대는 대체 무엇일까요?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유럽 연합의 형성 과정을 보며 "이게 사람 사는 참모습이 아니겠나"며 감탄한 적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유럽연합은 현존하는 정치 단위 중 매우 진보 성향인 편이며 사민주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실천하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인권유린이나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누구보다도 앞서 강력하게 규탄하는데, 제 목소리를 일부 회원국의 반대에 부딪혀 못 낼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는 우리도 다 잘 알듯 2012년경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적 있는데 이때 중국이 크게 도와줬습니다. 이후 그리스는 EU 안에서 중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저지하고 나서는 편입니다. 치프라스 총리는 아주 자주 베이징을 방문하며 "거의 성지 순례를 하는 것 같다"는 게 이 책의 입장입니다(p229).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특정 인종,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개인에게 혐의를 두고 수사기관이 집요하게 추적하는 걸 "인종 프로파일링"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엘리멘트리>에도 왓슨(드라마 여주이자, 범죄자 잡으러 다니는 자문인)이 일종의 인종 프로파일링을 기관으로부터 당하는 장면이 시즌 4에 나옵니다(나중에 풀려나기는 합니다). 기소가 유력한 사건인데도 인종 프로파일링의 위법성을 이유로 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미국에는 많다고 하며 참으로 부럽습니다. 이래야 선진국이지요. 그런데 중국은 ㅎㅎ 국가 자체가 "인종, 민족 프로파일링에 기반하여(p263)" 모든 공적 활동을 전개하다시피합니다. 이 역시 (반대의 이유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호주중국 국제 인재 교류협회는 이름만 보면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바람직한 단체 같지만 사실은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간첩 에이전시나 다를 바 없습니다. 현지(여기서는 호주)에 이주한지 얼마나 되었든 간에 재외 중국 교포, 즉 화교는 중국에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두게 되어 있는데, 특히 연구 기관 등에 근무하는 중국계 과학자와 집중 교류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게 이들의 일입니다. "외국인이 중국을 섬기도록 하라(p306)" 중국전자과기집단의 경우 "인민해방군의 이익을 위해 민간 전자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대놓고 표방합니다.

얼마 전 공자학원에 대한 한국, 일본의 반감이 증가한다는 외신이 나온 적 있는데 이 책 p323에 관련 언급이 나옵니다(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과연 공자학원에 관심이나 있는지, 경각심을 가지는지는 의문입니다). 첵에도 나오지만 문혁 당시 마오가 공자의 묘를 파헤치고 대대적인 반 유교 활동을 전개한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일 뿐입니다. 공자의 고결한 정신과는 달리 공자학원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정부의 선전 활동에만 열심"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닝보유업은 생산일자를 속이는 등 호주 현지 법규를 어겨 가며 우유를 생산해 왔습니다.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호주 정관계에 연줄이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책에서는 주장합니다(p345). 이렇게 된 건 일찍부터 호주와 중국 사이에 FTA가 맺어졌기에 가능했던 점도 있습니다. "신까지도 포섭하라"는 말도 나오는데 호주에는 이른 시기부터 중국계들이 진출했고 이들 중 일부는 기독교를 믿으며 중국 당국의 관심은 이들의 포섭에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전자과기집단은 특히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하여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사찰하고 감시하는 데 공헌합니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어느 나라나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나 이에는 빅데이터의 효율적인 관리가 필수적인데 중국의 해당 집단은 전혀 통제를 받지 않고 이런 데이터를 취급합니다. EU에서 몇 년 전 미국의 저커버그를 불러 혼을 낸 적도 있지만 개인정보의 광범위한 취급은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르는 작업이고 과정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이런 점에서도 디지털 사회의 취약점과 결합하기 쉽습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과연 우리 한국에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이 책은 주로 호주에서의 상황을 중심으로 분석을 행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도 무섭지만 중국의 장단에 놀아나며 자국의 이익을 해치고 서 푼의 뇌물에 영혼을 파는 호주인들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중국 욕할 것 하나도 없고, 21세기에도 이런 변형된 사대주의와 패배주의의 확산 공작이 (그것도 백인종을 상대로)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뭐 따지고 보면 중국이야 중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뛸 뿐인데 그걸 어떻게 비난하겠습니까. 정신 못 차리고 나라를 파는 매국노들이 (어느 나라에서나) 진짜 범죄자들이지요. (이 독후감을 쓰는 저를 포함하여) 방관자의 책임도 덜할 거 없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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