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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 12,600원 (10%700)
  • 2020-06-17
  • : 204

김현진,『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에 대한 리뷰

출판사에서 제공한 인터넷서점 책 소개는 “주인공들이 펼치는 가슴 저리다가도 마음 통쾌해지는 사랑과 복수의 옴니버스!”라고 기재되어 있다만 소설에는 복수도, 통쾌함도 없었다. 진한 아이라인을 그린 채 문을 나서는 발걸음을 기대했으나, 방문을 닫고 어지러운 방안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가까운 소설. 그러니까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복수보다는 복기에 가까운 소설이다.

작가는 여덟 명의 한국 여성 인물들을 내세워 그녀들이 마주하는 폭력의 현장을 포착해낸다. 폭력은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친구에게 “나 유부인 거, 정말 몰랐어?”라는 질문을 듣거나, 7년 동안 헌신했던 고시생 남자친구에게 “우린 앞으로 갈 길이 다른 것 같아”라는 이별 통보를 받는 방식으로 현전한다. 때로는 “시퍼런 식칼의 날”처럼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무기가 되어 여성들의 삶을 위협한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태롭게 하는 폭력의 총체를 면밀히 포착해냄으로써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성별로 말미암은 권력적 구조에 대한 회의를 던지고, “다소 지리멸렬하고 얼핏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십상”인 “여성의 고통”에 대해서 복기해 나간다. 그러나 김현진의 소설은 복기 이후에 새로운 국면으로는 나아가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배제하더라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을 둘러싼 담론들은 분명 의미 있는 기록물이리라. 더불어 조남주의 책에 대한 첨예한 의견들이 아직도 지속적으로 생산되며 화두가 되는 이유에는 책이 지녔던 적절한 시의성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82년생 김지영』 이후에 출간된, ‘적절한 시의성’을 함양하지 못한 책들은 그 점을 보완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지참해야 하지 않을까. 그 ‘무엇’이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라던가 다른 시선으로 발견한 문제의식까지는 아니었어도, 겪었던 사태에 대해 “조용히 “시발……“ 하고 중얼거리고는 잠이 들” 어버리는 체념과 “걸음을 더 재게 놀”리는 도망의 자세여서는 안됐다. 이래서는 옆집에 분식점이 잘 된다고 앞집에 분식점을 내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또한 소설에서는 “야, 빨아봐!”라고 말하는 바바리맨에게 “야 이 새끼가, 부탁을 하려면 공손하게 해야지!”라고 말한다던가, 젊은 남자의 집에 잠입해서 “그 남자의 단추를 하나 더 풀”면서 “꺅! 내가 무슨 짓이야!”라고 생각하는 장면 등 이전의 사건을 고려해보아도 인물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 납득이 잘되지 않는 장면들이 꽤 있었다. 근간의 개연성이 부족한 사건에는 언제나 과장된 톤이 수반되기 마련이어서 이런 장면들을 마주할 때면 모래를 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희곡적인 어투가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고개가 끄덕여지게 쓸 수는 없었겠느냔 의문이 들었다.

김현진은 ‘작가의 말’을 통해서 “차라리 밋밋할 만큼 평범한 여성의 삶을 넣을지언정 유난히 박복하거나 이른바 ‘불행 포르노’의 주인공이 될 만한 여성의 삶은 배제하기 위해 주의했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유의함과 사려 깊음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럼에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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