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료하거나 힘이 나질 않을 때마다 유튜브에서 〈인간극장〉 ‘레전드편’을 습관처럼 보곤 한다. 그렇게 본 시리즈가 벌써 수십 편이나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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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에서 유명하다는 건 다 꿰고 있다 보니, 나이 지긋이 든 분들과 대화할 때 소재가 떨어지면 곧바로 〈인간극장〉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러면 단숨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화제가 이어진다.
얼마 전,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생 책을 만났다. 시각장애인이자 마사지사인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책이다. 읽는 내내 〈인간극장〉 ‘레전드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최근에 읽은 인문서나 자기계발서 등은 뭔가 있어 보이려 MSG를 마구 넣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MSG 없이 자신의 삶의 상처들을 과감하게 내보인다. MSG가 없어 재미가 없느냐 하면 또 반대다. 날 것 그대로 상처들을 내보이는데도 뭉클하면서도 재미와 감동까지 있다. MSG 대신 엄마표 손맛을 넣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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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조승리는 15살 어느 날, 불치병으로 앞으로 세상을 못 볼 거라는 선고를 받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엄마는 용하다는 무당이며 치료 방법을 찾아 헤맸음에도 결국 시력을 완전히 잃는다. 작가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럼에도 장애는 인정하고 할 수 없는 영역을 뛰어넘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 노력이라는 게 단순히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노력보다, 장애인이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금기시된 영역을 돌파하려는 시도였다.
"장애는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버린다."
_<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문장
이 책엔 엄마와의 추억과 마사지사로 겪은 에피소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단편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간다. 슬픈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 슬퍼지려 하면 조승리표 유머가 갑자기 어딘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버린다.
이 책은 조승리 작가의 첫 책임에도, 책을 처음 써본 작가로 느껴지지 않는다. 챕터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고 묵직한 울림과 감동이 있다. 비록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삶의 태도나 마인드를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어찌나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면서도 눈물이 나려 하는지. 앞서 말한 〈인간극장〉 을 본 것 같다는 표현이 어쩌면 정확할지 모른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데 느닷없이 절망이 등장해 삶을 좌절하게도, 힘들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내려는,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서사를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힘을 얻게 되고 힘든 현실도 극복하게 만드는 그 에너지. 이 책을 통해 그 에너지를 나 역시 간접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타이베이로의 출발, 그것은 왜 우리끼리는 안 되냐는 반항심에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글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더 많은 거절과
더 많은 모욕과 조롱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행복은 바라는 대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과 의지로 맺는 열매 같은 것이라는 걸 나는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_<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문장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보고 나면 좋거나 싫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전해준다. 그것이 바로 에세이의 힘이자 작가의 삶의 태도가 아닐까?
조승리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하는 바이며, 내 주위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사는 게 힘들고, 되는 일도 없고, 왜 나만 이렇게 살까 하며 자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으로 삶의 충분한 에너지를 얻으시길.
내가 탱고를 시작한 것은 감정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나이를 세는 숫자가 늘어날 적마다 나는 무언가 하나씩을 잃어버려야 했다. 시력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연인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하루라는 시간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이 그냥 흘러갔다. - P200
장애는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버린다.- 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