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르크스주의의 성립
(1)아나키즘과 국가 사회주의 사이에서
1890년대 제2인터내셔널이 성립되기 이전 국제혁명운동에서는 바쿠닌의 초기 아니키즘, 라살레의 국가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함. 마르크스주의는 아나키즘과 국가 사회주의라는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두 개의 사상운동을 경쟁자로 하여 이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음.
바쿠닌의 아나키즘은 혁명의 주체로 도시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이 포함했으며 이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모든 권위체계-자본, 국가, 종교-를 철폐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음. 그 일이 실현된 뒤에는 “선장 없이도 잘 가는 배” 와 같이 자율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질서가 생겨날 것임. 따라서 혁명 운동이 ‘정당’의 형태를 취하는 것도 거부했고, ‘과학적’이론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이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도 반대했음.
라살레의 국가사회주의는 아나키즘과 정반대되는 입장으로 부르주아들에게 맞서 노동계급이 사회주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의 힘을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에 두 가지 조건을 요구함. 첫째, 노동자들에게 보편적인 선거권을 부여할 것. 둘째, 무기력한 ‘야경국가 夜警國家’를 포기하고 경제영역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 것.
마르크스주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자본과 국가 등의 현존 사회 기구를 철폐한다는 아나키즘의 전망을 공유했지만, 또 동시에 무모한 직접 행동을 삼가고 지도부의 ‘과학적’지도에 따른 일사불란한 행동을 통해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다시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라살레의 비전 또한 공유함.
현실에서 자본주의, 국가, 종교는 역사 속에서 출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면 그것들이 소멸할 역사적 계기와 이유도 해명할 수 있음. 사회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노동계급인데, 이들을 과학적인 능력을 가진 지도부 아래 ‘정당’으로 조직하는 것이 제1인터내셜널의 과제임. 이 정당은 바쿠닌 집단과 달리 현존지배체제를 즉각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적 소유를 철폐해야 함. 따라서 이 정당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개량적’ 조치 도 마다하지 않음.
(2)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 노선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가진 기술적 생산력에 의해 기본적으로 형태가 결정되며 이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직접적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과 그 노동 생산물의 잉여 부분을 수취하는 자들 간의 계급적 관계-가 나타나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종합으로 생산되는 생산양식을 기초로 국가, 법, 제도, 종교, 윤리 등의 ‘관념 형태’들-상부구조-이 생겨나 사회적 구성체를 이룸.
이러한 사회구성체는 생산력이 발전해 생산관계에 긴장이 생겨나고 그 긴장을 추동하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됨. 새로운 생산력에 조응하지 못사는 생산관계뿐만 아니라 그 위의 상부 구조 일반이 아래로부터의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이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계급의 역동성 때문에 ‘모순’에 처하게 되고, 결국 새로운 계급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생산력에 조응하는 생산관계, 나아가 상부 구조 일반의 형태를 만들어나감으로써 역사적 발전 단계의 들어서게 된다(역사적 유물론 material conception of history).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대안은 더 높은 생산력을 담보할 수 있는 생산 관계와 상부 구조를 갖춘 사회구성체, 즉 사회주의뿐이요, 이러한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대안세력은 오직 노동계급뿐임. 따라서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두가지 필수조건은 첫째,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무장한 강력한 노동 운동 및 사회주의 정당, 둘째, 높은 수준의 생산력임.
2.마르크스주의의 위기
(1)필연인가 자유인가 – 라브리올라와 크로체
●라브리올라 :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자본주의라는 주어진 조건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노동계급의 의지와 실천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근거를 찾는데 있으며, 역사적 유물론이나 정치경제학은 그렇게 스스로 ‘해방’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주어진 조건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수단, 즉 연구계획에 불과하다고 보았는데 철학적으로 자유/필연의 문제와 닿아 있을 뿐만아니라 운동 이념의 차원에서는 대중적 설득의 근거를 객관적 과학에서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 마음속의 윤리적 • 도덕적 결단에서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닿아 있음. → 크로체의 비판 : 역사적 유물론과 정치경제학은 과학인 아닌 역사와 경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크로체 :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과 정치경제학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자극하는 하나의 ‘신화’이며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노동 계급의 마키아벨리’임. →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공백을 드러내었음.
(2)수정주의 논쟁 – 마르크스주의는 정말 과학안가?
●베른슈타인 : ‘혁명주의’의 수사학을 걷어 치우고 의회에서의 다수 석 점유를 통한 권력 장악과 각종 제도 및 입법 개혁을 통한 현실 개혁에 이론과 실천을 집중하자고 호소함. 요컨대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임. 자본의 지속적 독점화로 중간 계급이 소멸하면서 노동 계급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은 전혀 현실화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 계급의 실질임금이 저하하면서 ‘궁핍화’가 진행되기는커녕 실질 임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
→ 카우츠키, 룩셈부르크의 비판 : 너는 마르크스주의를 배반했다.
→ 레닌의 비판 :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세계 진출로 야기된 ‘’제국주의’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구조 때문이다.
이렇게 전면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앞에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운동은 세 갈래로 나누어짐.
3.마르크스주의의 해체
(1)볼셰비즘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볼셰비키는 제3인터내셔널, 즉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결성함.
제국주의 덕분에 자본은 위기와 공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모순을 식민지로 전가해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경제적 여유분으로 노동 운동 상층의 지도부를 매수해 ‘노동 귀족’을 만들어 냈음. 이렇게 자본주의가 세계적 체제로 전환된 이상 혁명은 영국이나 독일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음.
→그러나 유럽 각국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1920년대에 볼셰비키도 유럽혁명의 꿈을 포기함
→러시아 혁명 권력은 점차 폭압적인 국가 사회주의로 변해감(1921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 사건)
(2)사회민주주의
1차 세계대전의 끝난 뒤 카우츠키의 정통주의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다시 봉합되어 사민당 안에서 공생하게 됨 → 교조 없는 실천과 실천 없는 교조가 결함되어 있는 기묘한 꼴.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의 국민정당으로서 ‘국민 정치 national politics’ 전반을 책임지고 통치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했음. 그러나 정통주의자들은 국가 권력 참여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노선은 실현되지 못하였음.
(3)생디칼리슴
생디칼리슴은 노동조합을 뜻하는 프랑스어 ‘생디카syndicat’에서 나온 말로 전세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써 스스로를 조직해 산업을 운영하는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현존하는 국가와 자본가들을 일소해버리는 혁명적 방법-총파업-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음.
→조르주 소렐은 생디칼리슴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라 주장하였음.
문제는 이렇게 극단적인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 즉 모든 것이 노동자들 스스로의 주체적 결단과 실천에 달려 있고, 노동자들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 이상적인 사회를 얼마든지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과연 다수 대중을 끌어들일 만큼 설득력 있는 변화 전력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극단적 주의주의voluntarism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일 슈트라서 형제의 나치즘, 일본 기타 이키의 일본 파시즘의 사상적 지주가 됨.
4.1920년대의 새로운 흐름들
(1)대안 과학의 필요성
‘과학적 사회주의’가 난관에 봉착한 이유
첫째, 사회주의 운동의 철학적 기초가 객관적 필연에 있는지 아니면 인간 집단의 도적적 결단과자유의지에 있는지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채 소위 변증법에 의해 뒤죽박죽 되어 있었음.
→정당이나 운동이 지향하는 유토피아는 사람들 마음에 내재한 것이기도 해야 하고 또 초월적인 이론과 분석으로 검증되어 비판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야 함. 즉 정치학에서 말하는 ‘신중함Prudence’의 덕목을 필요로 함.
둘째, 노동계급이라는 협소한 집단을 넘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총체적 계획을 내놓지 못했음.
셋째, 20세기에 새롭게 변모해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이 없었음.
(2)1920년대와 새로운 노선들
●오토 바우어 등이 이끈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의 소위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오스트리아 제국의 민족 갈등, 법, 경제학, 문화, 사회 심리학 등을 포함한 사회 문제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 조사해 그 결과로써 내용을 채워야 할 사회 조사 연구 계획으로 보았음 → 수도 빈을 노동자들의 문화 운동과 사회민주주의적인 제도적 장치들이 아주 높은 수준에서 결합되는 도시로 만들어 소위 ‘붉은 빈’을 꽃피웠음.
●안토니오 그람시
노동계급은 우선 자신들의 협소한 계급적 이익을 내세워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사회 전체의 국내적•국제적 상황을 두루 살펴 민중 전체가 마음으로 열망하는 ‘국민적•민중적 요구’를 찾아내고 그것을 전투적으로 옹호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자신의 이익조차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함.
●앙리 드 망
노동자들이 마음속으로 열망하는 것은 물질적•문화적 생활수준 개선을 통해 부르주아들과 똑 같은 시민의 삶을 얻고자 하는 것뿐이며, 그들의 의식 속에 선천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유전자가 박혀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믿음은 터무니 없는 것이며 사회주의 운동은 중산 계급 출신 지식인들의 의식과 열망을 노동 계급에 씌워놓은 것일 뿐임.
→사회주의 운동은 공동체 의식에 기초해야 함. 따라서 노동계급이라는 협소한 집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실현할 전국적 단위가 요구됨.
→혁신적 제안을 담은 저서 <노동의 계획>은 1933년 벨기에 사회당에서 채택되었음.
출처 : 독서대학 르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