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지막 강의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의 마지막 강의. 오늘 강의의 주인공인 주몽은 온갖 시련을 겪었으나 결국에는 이를 극복하고 고구려를 창건한 영웅이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는 신적인 존재이다. 이처럼 이중적이고 모순적 성격을 지닌 신화 속 인물을 트릭스터(trickster)라고 하는데 신과 인간, 자연과 문화, 창조자와 파괴, 혼돈과 질서, 총명과 우둔 따위의 양의성(兩意性)을 띠면서 자연히 양자의 중간적 존재, 즉 매개자로 활동하는 특징이 있다.
마침 마지막 강의가 있었던 날 서울시장 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강의 중에 박원순씨의 당선을 알게 되었다. 과연 서울 시민들이 바라는 영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박원순씨의 당선에 큰 영향을 끼친 안철수씨가 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지를 분석한 재미 있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안철수씨는 대중들이 희망하는 성공의 상징이다. 서울대 박사에 외국에서 공부했고 기업을 설립하여 자수성가 했고 수 천억원 대의 자산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서울대 교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성공은 안철수만 보여 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안철수가 다른 성공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주류이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고전 속의 매개자는 그를 필요로 했던 인간의 아픔을 이해하고 해결해 주는 역할보다는 신-매개자-인간으로 나열되는 능력의 중간자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그리고 고전 속의 매개자는 기다림의 대상이지 선택의 대상은 아니다. 오늘날 서민들이 기다리는 중간자의 모습은 능력과 소통할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그런 영웅은 우리 힘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고전 속의 상황보다 오늘날의 현실이 훨씬 나아 보인다.
2.그동안 강의를 들으며서
그동안 책과 강의를 통해서 느낀점을 말하라면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대해 한번쯤 ‘낯설게 보기’ 를 해 봐야겠다는 것이다. 효녀 심청, 열녀 춘향, 영웅 홍길동으로 듣고 배우고 당연히 그런 줄 알았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옛이야기도 이러할진대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의 가치관, 사고방식도 알고 보면 얼마나 많은 편협함으로 이루어져있을까?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홍세화씨의 『생각의 좌표』란 책을 많이 떠올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지만 과연 그 ‘생각’이란 게 과연 내가 스스로 사고하여 갖게 된 것일까? 몇 년 전 홍세화씨가 아주대학교에서 강연한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보았는데 강연제목이 “너는 무식한 대학생”이었을 게다. 한창 지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이런 모욕적인 딱지를 붙이다니. 무슨 근거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사회인도 다를 게 없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과서 중심의 입시교육을 통한 지식 습득으로 사고를 형성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주로 주류언론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나의 생각은 사실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지만 나는 마치 내 생각인양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홍세화씨가 제시한 대안은 독서와 자아성찰이다. 그러나 생각하는습관은 힘들다. 왜냐하면 생각할 줄 아는 힘은 결국 비판적인 사고와 더 나아가서는 현실 개혁에 대한 의지를 낳기 때문에. 서점가에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으라’는 책이 많이 팔리고 직장인들에게도 ‘긍정 마인드’가 성공을 위한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긍정이란 무비판적인 현실 수용이 아니라 현실이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을 때에만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6주간 정답이 없는 문제를 다양하게 풀어보는 연습을 많이 했다. 정답은 각자의 몫. 인문학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출처 : 독서대학 르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