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모두 들어주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7,80년대는 내가 갖고 싶고 원해도 쉽게 포기하고 수긍하는 그런 시대 였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아이들이 더 편리하고 쾌적하고 풍요롭게 지금의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할 수 있지만 반대로 순수한 동심의 세계는 점점 뒷걸음 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구시대적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흔히 말하는 틀딱, 꼰대 마인드로 치부 되어 버릴수도 있지만 말이다.
현시대의 어린이들은 나름의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동심의 가치가 분명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나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70~80년대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세계 정세가 요동치던 시대 였고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격변기였다
독재정권. 민주주의. 데모. 체루탄. 북괴. 전쟁. 기습 점거. 테러...... 이러한 과격하고 무서운 단어들이 서슴치 않고 등장하던 시기였고 그러한 모습들을 TV를 통해 보던 시대였다.
물론, 나는 어렸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과 멀리 동떨어져 있었고, TV에서나 볼 수 있는 머나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형들이 데모하고 어른들이 국회나 미대사관 앞에서 활극을 벌여도 난 그게 재미 있을 뿐이었고 하나의 구경거리였던 시절이었다.
'엄마 100원만' 해서 엄마가 100원을 주면 군것질하며 행복을 누리던 그런 시절이었고, 100원 하나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고 200원이면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공산당 때려 잡는 만화 영화 '똘이장군'을 수원 중앙극장 개봉관에서 봤고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찾아 삼만리'와 다른 일본산 애니메이션을 수원 터미널 근처 영화관에서 동시 상영으로 보고 행복해 했었다.
어른들이 무슨 짓을 해도 무슨 악행을 저질러도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비록 물질적으로 궁핍 했어도 어린이들이 추억을 쌓고 마음껏 뛰놀기 좋은 때였다.
'아홉살 인생' 의 서술 시점은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1979년이지만, 굳이 서술 시점을 표기 안 하더라도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중반에 어린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이 책을 보는 순간 나와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구나 하고 바로 느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나 스토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좀 사는 집에만 있던 '비데오(비디오)' 크리스마스나 되어야 아빠가 사주시던 '(결국 항상 미완성) 아카데미과학 조립식 장난감', TV에서 보며 내가 정의의 사도가 된 것 마냥 가슴을 졸였던 '원더우먼', '헐크' 등등 그 시대 다양하지 않고 한정된 어린이 문물과 문화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그림으로 된 참고서이자 기록물로 칭하고 싶다.
그 당시 어린이들이 함께 공유 했던 로망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림으로 느껴보는 이 기분. 문화재는 아니지만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 이 책의 가장 큰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