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는 원래 화가였다.
‘졸라맨‘ 드로잉으로 바라본 화가로의 재해석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아니지만, 도록(종이, A4나 정사각형 책크기, 그리고 그림 위주)을 사는 사람도 아닐뿐더러(연애중이라면 모를까...나이가 몇 개인데) 프란츠 카프카 또한 불가원불가근의 작가이다. 그렇게 매력있는 작가도 아니란 말을 에둘러 한 표현이다.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신하는 <변신>정도를 읽었을 정도랄까…인간 자체의 불안, 상실이나 소외 등의 주제로 먹힐 정도로 정적이고 평온한 생활은 아니었으니까… 읽어보라는 추천을 넘어 직접 선물 받은 책이다. 이 책 이해관계자로부터 받았다.
책표지의 그림과 글들을 살폈다. 정리하면 앞면에 일면 ‘졸라맨’이 눈에 띄고, 뒷면에는 작가와 독립적으로 ‘프란츠 카프카’가 화가로서 재발견하고 이제 재정립해야 한다는 설명이자 주장이다. 쓱쓱 선과 획으로 그은 졸라맨(검게 채워진 부분포함)그림들로 화가 반열로 이끌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럴 때 살짝 먹힐 수 있는 다른 그림들이 있는지 내지 그림 파트를 살폈지만, 역시나 그런 한방도 없었다. 결국 머리속의 상상력과 서사로 이끌어 갈 것으로 경로를 예측했다.
초반부터 난감한 해석의 영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졸라맨’ 드로잉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2명이 있었다. 초딩 저학년 시절 큰 아들과 20세기 미술천재 피카소 그림들이다.
졸라맨 드로잉의 매력은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그림을 남녀노소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술 창작의 하늘과 땅을 오가는 스펙트럼 그 자체이다. 작가 미상의 브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평가자 점수차가 가장 적거나 뒤집힐 수 있는 그림이 아마도 ‘졸라맨’이지 않을까 감히 주장해본다. 큰 아들에게 졸라맨 그림이란 미술이 싫은데 뭐라도 그리라는 사교육 종사자와 타협의 산물인 반면, 사진보다 정교한 데생 소묘화를 그린 피카소의 졸라맨은 결국 의미를 찾아가는 해석 영역으로 넘어간다. 바꿔말하면, <무슨 생각이 있어 저렇게 표현했을거야>로 짐작한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책상위에서 자고 있으면 어제 무슨 짓을을 했길래 자냐고 혼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자면 어제 공부하냐고 힘들었나 보다로 위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철학자는 피카소 그림을 해석하는 글은 아래와 같다.
“피카소의 청소년 시절 작품을 보면 이때는 피카소가 소묘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어떻게 그리는지를 배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배운 것을 피카소가 잊어버릴 수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작가가 쓰면 안 되는 방식 혹은 지금까지는 쓰이지 않은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은 규칙을 망각하는(혹은 선택적으로 무시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알아야 그러기가 쉽다. 그러면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익힌 것을 벗어 버릴 수가 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
_ 상처로 숨쉬는 법 (김진영 저, 한겨레출판) 중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묘화들을 살펴보면, 사실 화가로 인정할 수 있는지 증빙할 수 있는 확실한 한방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보낸 채색된 판화 엽서도 화가로서 인정할 수 있는 작품(p.220)으로 포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카프카의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속 그림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p.260). 그 편지속 그림은 직관적이다. 드로잉의 섬세한 선과 터치 그리고 동적이면서도 정확한 묘사는 카프카 그림 졸라맨도 결국 해석의 영역으로 넘겨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미술사를 전공했거나 카프카를 연구한 분들의 졸라맨 소묘화 해석은 어찌보면 카프카의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속 그림보다 말이 더 많다고나 할까?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그림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80년대 후반 대학시절 학교앞 <샤갈에 눈내리는 마을>과 더불어 <카프카의 연인 밀레나>라는 이름을 카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화실을 겸했던 그 카페의 주인장은 프란츠 카프카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카프카가 화가라고 말하고 있었던 거 같다.
이 도록은 출간 배경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림 저작권 소유관계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결국 소송으로 정리된 이후 세상에 빛을 봤다. 권리 관계의 정리는 처음 공개되는 카프카 그림의 희소성과 사후 100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카프카 생존부터 저작물 권리관계의 중요성을 주변 인물들은 벌써 눈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록 구성상 졸라맨 시리즈 그림과 설명(p. 287-352)을 함께 있었으면, 그림의 이해를 높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미술 전시회에서도 그림 아래나 옆에 제목, 제작년도, 소장장소, 크기등의 텍스트는 그림의 기본 정보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프란츠 카프카 문학과의 별개로, 이 책의 핵심 비평은 졸라맨 그림도 독립적인 창작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트속의 소묘화나 편지등에 삽화등이 텍스트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활이 아닌 독창적인 그림으로 존재한다는 구구절절 그 당시 시대 상황과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소개하고 있다. 읽다보면 모임에 가서 교양에 숟가락 더하기에 도움이 될 듯하다.
먼저 읽고 본 독자로서 책 추천하는 순서는
특히 그림 초심자는
1. 그림들(p27-208)을 본다.
2. 카탈로그 레조메 (p287-352)을 보면서 그림을 다시 본다. (2번 정도 반복 추천)
3. 그림 비평은 읽는다
카프카가 낙서(?)한 졸라맨의 그림 100여점(희소성!!!)에서 화가로서 인정할지는 독자 몫이다. 끝으로 한마디, 졸라맨을 무시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