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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bird님의 서재
  • 정원의 황홀
  • 윤광준
  • 18,000원 (10%1,000)
  • 2024-11-01
  • : 2,300

소쇄원과 명옥헌에 드나들었던 사람도달랐을 것 같다. 고고한 선비와 예술가들이 소쇄원을 찾았다면, 털털한 성품의 사람들이 걸진 목소리로 창을 하는 곳이 명옥헌이 아닐까. 공간의 분위기가 오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결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_ 담양 명옥헌 중- P263
관가정의 마당은 비어 있어 채워지는 게 많다. 바람 불어 날리는흙먼지와 지저귀는 새소리도 햇빛과 달빛도 마당 안에 가득 찬다. 열어놓기만 하면 채워지는 하루와 계절의 볼거리, 들을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다. 관가정 누마루에 앉아 누리는 풍요란 마당을 비워놓아 생기는 일이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말한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이라는 Less is more‘를 조선시대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_ 경주 관가정 중- P271
서석은 자연석이다. 땅을 파니 돌이 나와 연못을 만들었을 뿐이다. 60여 개의 조각으로 이어진 돌은 형태와 크기가 각기 다르다. 그중 특징적인 돌 19개에 이름을 붙였다. 문외한이라도 돌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경정의 주인은 돌에서 성리학적 질서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화시키니 돌은 서석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꽃이 아니라 했던 김춘수 시인의 ‘꽃‘을 서석지에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_ 영양 경정 중- P277
여름의 서석지는 무성한 연잎으로 뒤덮여 있어 연못인지 모를 정도다. 새잎 돋는봄에 찾은 서석지에서 전모를 보게 됐다. 자그마한 서석지를 품은 경정의 크기 또한 크지 않다. 사우단 뒤의 주일재까지 포함한 면적이다. 경정과 서석지가 작아 보이지 않는 건 차경된 뒷산이 시선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정원은 배경된 자연과 합쳐진 크기로 파악해야 옳다.

영양 경정 중- P280
초간정은 냇가 바윗돌 위에 지어졌다. 물에 더 다가서고 오묘한 기암의 생김새를 잘 보기위해서다. 얻는 게 있으면 버릴 것도 있는 법이다. 지형 탓에 정자 앞쪽 먼 산의 차경을 포기하고 가까운 물과 돌에 집중했다.

_ 예천 초간정 중- P285
초간정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병암정이 있다. 초간정을 먼저 들렀다면 규모와 분위기가 달라 당혹감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직벽의 암벽 위에 서 있는 정자는 임금의 대궐집에 비해도 꿀리지 않는다. 도대체 이렇게 큰 정자가 시골마을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은 가도 정원은 남아 푸르른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_ 예천 병암정 중- P296
서로의 시선을 거두어버리는 방법은 크고 높은 건물로 위압의상징물을 만드는 거였다. 저곳은 다가서면 안 되는 곳으로 보이게해야 하니까. 반대로 자신도 바깥에 관심 없음을 드러내야 했다. 높은 담을 세우는 일이다. 담장은 병암정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절벽 위에서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_ 예천 병암정 중- P302
작지 않은 크기의 연못과 십이봉이어울린 압도감도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들다. 나무는 제자리를 잡아 안정되고고목에서 피는 꽃의 풍성함이 조화되어사람을 안심시킨다. 흙산인 십이봉은주변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동화되었다. 백 년의 세월이 촘촘하게 메꿔준 자연의 디테일 덕분이다. 이곳을 처음 찾았다면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자연스러움에 놀란다. 용호정원에선 유독 행동이 느려지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_ 진주 용호정원 중- P312
낙동강과 멀리 이어진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악양루. 기름지고 넉넉한 땅을 일구기 위해 둑을 쌓은 함안 사람들이다. 치수를 위한 노력은 고됐지만 풍광은 풍요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보기만 해도 배부를 것 같은 차경이다.

_ 함안 억양루 중- P319
악양루는 강 건너편에서 봐도 아름답다. 습지에 핀 꽃밭과 이어진 산세가 유난히 부드럽다. 산 능선은 강을 향해 머리 숙였고 강은 산을 머금어 안정된다. 뒷산이 다시 고개 들어 상승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중첩된 풍경은 선의 예술 같다. 우리 산하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풍경과 마주칠 수 있을까. 산속의 낮은 곳에 악양루가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풍경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_ 함안 악양루 중- P322
갖추어야 할 정자의 요소는 다 갖춘 거연정. 산 좋지 물 좋지 정자까지 훌륭하지. 요즘엔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 이곳에 정자를 지은 이도 알았을 것이다. 책 읽으며 이토록 멋진 산수를 즐기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서양의 키케로도 서재와 정원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로 꼽았다.

_ 함양 거연정 중- P327
곧게 낸 길 양편에 연못을 둔 임대정의 입구는 독특하다. 길 위에 돋은 풀들은 마치 양탄자 같은 색깔과 질감으로 다가온다. 담으로 경계를 두르지 않은 원림이란 성격이 중요하다. 의도적인 공간구획으로 동선을 유도하고 시선을 이끄는 장치를 두었다. 딱딱한 정형에 얽매이지 않는 호남 정원의 독특함이다.

_ 화순 임대정 원림 중- P332
정자 앞에도 작은 연못이 있다. 우리 정원에서 연못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구분하는데 석축을 쌓아 물을 가둔 연못은 당이고 연못을 파서 물을 채운 것은 지가 된다. 위쪽의 연못은 사각으로석축을 쌓고 원형의 가산까지 들인 당이다. 천원지방의 원리를그대로 적용한 반듯한 연못이다. 연못가에 여섯 개의 돌을 세워 정자가 세워진 이유를 드러낸다. 연꽃 향은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지니 이 향기를 붙잡고 싶다는 내용이다. 마음을 닦아 스스로 돌아보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고매한 삶의 덕목을 수시로 확인하고 실천하기 위한 증표로 삼았다는 걸 알 수 있다.

_ 화순 임대정 원림 중- P336
한국인이 말하는 절경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는 침수정. 이곳을 찾아낸 손성을 또한 경치를 감탄하며 건너편위에 각자까지 해놓을 정도였다. 맑은 물이 소와 폭포를이루고 흰 모래와 기암이 어울렸으며 직벽으로 선 석화암 산은 그 자체로 절경이 되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침수정 안에서 보는 경치는 더 아름답다. 아쉬운 점은 평소문이 닫혀 있다는 점이다. 정자는 많은 사람들이 즐길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국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하는 일이니까.

_ 영덕 침수정 중-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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