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수밭(청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직접 읽은 후 솔직한 감상을 담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류혜인 『동화가 마음을 읽어줄 때』
어릴 적 읽었던 동화는 대부분 이야기의 결말로 기억에 남아 있다. 신데렐라는 왕자님을 만나 행복해졌고,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은 슬펐으며, 양치기 소년을 읽으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었다. 그때의 동화는 대부분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동화를 읽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다.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 그리고 그 모습이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류혜인의 『동화가 마음을 읽어줄 때』는 바로 그런 시선으로 익숙한 동화를 다시 읽게 하는 책인듯하다. 상담교사인 저자는 신데렐라, 성냥팔이 소녀, 피노키오, 인어공주, 양치기 소년 등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동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담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법, 부정적인 생각과 거리를 두는 법, 고통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법 등 나 자신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건강한 관심과 인정, 진실한 소통, 공감과 이해, 적절한 경계 등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다룬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동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의 삶 속에 적용해보게된다.
가장 먼저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이야기는 신데렐라였다.
신데렐라는 어린 시절부터 새엄마와 언니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계속해서 타인의 평가에 노출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평가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결국 스스로에 대한 생각까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평가받으며 살아간다. 이미 지나가버린 말인데도 유독 부정적인 한마디는 오래 기억에 남고, 어느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나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 소개하는 수용전념치료(ACT)의 **‘탈융합’**이라는 개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말이나 생각의 내용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이 ‘융합’이라면, 탈융합은 그 말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은 이미 지나간 하나의 말일 뿐인데, 우리는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기억까지 연결하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 때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가 계속 바뀐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 자체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으며 **‘타인의 평가는 그 사람의 생각일 뿐, 그것이 곧 나의 정체성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인데도 신데렐라의 삶을 통해 바라보니 훨씬 쉽게 마음에 들어왔다.
성냥팔이 소녀를 통해 풀어낸 ‘고통’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우리는 힘든 일이 생기면 때때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살아가는데 나만 힘든 것처럼 느낀다. 거리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책에서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질병이나 인간관계, 스트레스, 상실처럼 각자의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고통과 괴로움을 구별해야 한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삶에서 고통스러운 사건 자체가 일어나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고통을 완전히 없애려고 애쓰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고통에서 또 다른 생각과 감정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괴로움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결국 힘든 일을 겪지 않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내 삶 전체를 끌고 가지 않도록 나를 지키고 다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 이 부분은 단순한 위로보다 현실적인 위로처럼 느껴졌다.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동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방법까지 생각해본다는 점이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를 이야기하며 소개하는 해결중심상담에서는 문제에만 집중하기보다 그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과 강점, 경험과 같은 ‘자원’을 발견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흔히 ‘내게 무엇이 부족한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 내 안에 문제를 견디고 해결할 수 있는 경험과 힘이 있는데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심리학 이론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동화를 통해 풀어낸다. 그래서 상담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이론을 이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게 된다. 무엇보다 좋았던 부분은 책이 정답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생각처럼, 이 책 역시 독자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떤 생각의 고리에 빠지는지,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그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을 건넨다.
어릴 때는 동화 속 주인공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는데, 지금은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궁금해진다.
책 속에서 저자는 같은 이야기도 살아온 삶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처럼 이 책 역시 읽는 사람의 현재 마음에 따라 가장 오래 머무르는 동화가 달라질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성냥팔이 소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어공주나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자신의 마음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고, 한참 머물러 읽은 문장들이 생겼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에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말을 발견하는 경험이 꽤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마음까지 언제나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고, 관계 때문에 상처받으며, 때로는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몰라 길을 잃기도 한다. 이럴 때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다시 펼쳐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동화가 세상을 배우게 해주었다면,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동화는 나 자신을 이해하게 해준다.
『동화가 마음을 읽어줄 때』는 마음이 지쳤을 때, 인간관계 때문에 흔들릴 때, 혹은 자신의 마음을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한 편씩 꺼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익숙한 동화를 통해 심리학을 어렵지 않게 만나고, 그 끝에서 다시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책. 책장을 덮고 나니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기억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