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전통과 같은 기독교 세계의 다른 부분들을 발견한 후에 깨닫게 된 것은 플리머스 형제교회를 통해서 교회에 들어감으로, 그 자체를 하나의 전통으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전통 속으로 이끌렸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인간들의 전통들을 매도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대변되는 해석학적 전통에 치우쳐 있었다. 이 전통은 성경을 하나의 해석의 대상이라기보다 읽기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원시주의primitivism서 절정에 달한다. 간단히 말해, 나는 "직접 소통의 해석학" hermeneutics of immediacy이라고 아래에서 기술하는 것 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 살며시 들어간 것이었다. 물론 이 해석학은 스스로를 해석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석의 실재성들과 나아가 불가피성 그리고 해석학적 전통들에 대해 나를 일깨워준 것은 바로 기독교적 차이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몸 내부에서 차이이다. 당신도 상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약간 속은 기분이었다. 실질적으로 감춰진 실재의 측면들을 갖고 있는 근본주의들에서벗어난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라 본다. 그러한 실재의 측면이 발견되거나 "실재"라는 것이 항상 매개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 다음과 같이 말하기 어려워진다. 당신은 뭘 감추려 하고 있습니까?-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