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것들을 걱정하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에 짓눌린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얽매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한다
그렇다면, 오직 과거와 미래에만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우, 그럼 지금은
누구나 한번쯤 공감할 법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겁낸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Carpe Diem(카르페 디엠, 현재를 살라)'과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되뇌지만, 온전히 현재에만 집중하는 일은 마냥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나의 이름이 아닌 것만 같아서
이름을 알고 싶어 길을 떠났다
긴 여정 끝에 본명을 알게 되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었지만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나는 이름을 남기며 살아왔다
(중략)
살아오면서 한 일이라곤 시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도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시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우, 시도가 있었다 중
초등학생 때 영국인 선생님은 날 Joey라 불렀다. 스페인에서의 이름은 Lucía였다. 전 남자친구는 나를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아직까지도 나를 아명으로 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는 사람의 명칭은 결코 주민등록상 이름으로 국한되지 않았다. 그깟 이름이 뭐라고, 가끔은 내가 한없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이름 세 글자를 오롯이 손에 쥐기 위해, 죽는 날까지 끝없는 여정을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살아가는 내내 '시도'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어느 현자는 한 사람이 죽으면 하나의 세상이 함께 죽는다고 했다. 그가 갖고 있던 생각, 느꼈던 감정, 바라보던 시선, 그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진다는 말이다. 한 개인은 사실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집약된 유일무이한 하나의 세상인 것이다. 이처럼 내게도 세상이 있다. <경계에서>는 바로 경계라는 나만의 세상의 풍토를 온전하게 기록한 하나의 지리서(地理書)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 지리학자일 뿐이었다.
이우, 경계에서,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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