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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880701님의 서재
  •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 스캇 솔즈
  • 16,200원 (10%900)
  • 2020-02-12
  • : 2,794

스캇 솔즈,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두란노, 2020)


저자는 팀 켈러 목사가 개척하고 사역한 리디머교회에서 설교 목사로 5년간 사역했고, 현재는 소위 바이블 벨트에 속하는 테니시 주 그리스도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바이블벨트는 기독교 극우가 강세인 지역이고, 내가 알기론 부시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이 지역교회 출신인 것으로 안다. 따라서 극우 성향이 강한 지역교회의 담임 목사가,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예수께 집중하자고 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크게 두 개의 선을 제시하는데, 첫 번째 선은 '교회 안에 그어진 선'으로, 다르게 표현하면 '교회 안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치 성향, 낙태, 가나안 성도, 돈, 성공, 성평등이 다루어지는데, 특히 미국과 비슷한 한국교회에도 실제적으로 해당되는 문제들이다. 


그중 정치 문제에 관한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하나님 나라는 보수적인 가치와 진보적인 가치 모두에서 비롯하는 전복적인 사랑의 행위를 통해 넓혀진다. 이것이 기독교 운동의 아름다움이다. 기독교는 두 시각의 모든 장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두 시각 모두에 내재한 흠과 단점과 불의를 거부한다."(46)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독교는 보수와 진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또 하나, 저자는 기독교 내에 성평등 문제와 관련하여 '평등주의'와 '상호보완주의'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데, '평등주의'는 남녀가 모든 사역과 모든 직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고, '상호보완주의'는 남녀가 평등하지만, 교회 안에는 질서가 있어서 대표적으로 여성 목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저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평등주의'의 입장을 변호하지만, 결국 자신은 팀 켈러 목사와 마찬가지로 '상호보완주의'라고 밝힌다. 나는 정말 소수에 불과한 이런 '상호보완주의'의 입장을 귀하게 생각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선은 '교회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세상의 교회를 향한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상에서 기독교는 왜 이렇게 환대받지 못하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피는데, 세상의 소리는 다음과 같다. "크리스천들은 완고하다." "심판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그리스도는 좋지만 크리스천들은 싫다." "기독교의 성 관념은 고루하다." "왜 이 땅에 고통이 있는가?" "크리스천들은 너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한다." 


솔직히 이 주장들에서 한국교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서도 저자의 글을 직접 인용하겠다. "예수님이 21세기를 사는 미국인이라면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친구로 삼을지 말지를 결정하시지 않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커플을 먼저 집으로 초대해서 우정을 쌓지 않고 죄를 지적만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은 교회 만찬회에서 치킨을 마구 먹으면서 흡연과 음주가 하나님의 전을 망치는 짓이라고 손가락질 하시지 않을 것이다."(178) 


예전에 읽은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가 생각난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향해 너무나 무례하다는 것인데, 저자는 "우리가 세상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관용할 수는 있습니다."라고 했다. 맞다, 우리에겐 정말 관용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이 뿌리내려야 하겠고, 세상 사람을 적대자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주목된 영혼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께서 지우신 선을, 교회라는 제도를 통해 긋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가 힘을 얻을수록 선은 굵어지고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선에 갇히지 않고, 선 밖의 예수와 함께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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