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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theless
  • 디어 마이 네임
  • 샤넬 밀러
  • 17,820원 (10%990)
  • 2020-06-30
  • : 394


성범죄 가해자 앞에는 ‘앞길이 창창한’ ‘성실한’ ‘모범생인’ 등의 긍정적인 수식어가 붙지만, 피해자의 앞엔 ‘술에 취해’ ‘피해자답지 않은’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는다.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선 가해 사실엔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의 평소 행실이 어떠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었는지에 더욱 주목하지만, 피해자는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 순간부터 그의 일상과 미래는 마치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오직 ‘성범죄 피해자’로만 프레이밍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을, 미래를, 그리고 이름을 잃는다.

 

[디어 마이 네임]은 미국의 미투(me too) 운동의 시발점이 된 스탠퍼드대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 ‘샤넬 밀러’의 목소리를 담았다. 명백히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셨고, 남학생 파티에 갔고, 당시의 기억이 없다는 사건의 발생관 무의미한 것들로 인해 샤넬 밀러의 일상은 산산조각이 되었다. 피해자가 파편화된 자신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가해자 ‘브록 터너’는 유망한 수영선수라는 이유로 모두가 그의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가해자의 일상을 자기가 나서 되찾아 주려 한다. 샤넬 밀러는 신원 보호를 위해 사용했던 ‘에밀리 도’라는 이름 뒤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회복하려 했지만 다시 좌절했었는지, 사회에 깔린 강간 문화가 피해자에게 어떤 무력감을 안겨주는지, 언제 희망을 느꼈는지 그 모든 것들을 얘기한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는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1부씩 나눠주고 싶을 정도로 현재의 강간 문화를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 샤넬 밀러가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그는 ‘성폭행 피해자 에밀리 도’에서 벗어나 ‘성폭행을 당했지만 생존했고 자신의 일상을 이어나가는 사람 샤넬 밀러’가 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김지은입니다]가 떠올랐다. 서 있는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분노와 무력감, 희망을 전하는 두 이야기. 동녘과 봄알람 두 출판사가 ‘내 이름을 기억해’라는 이름으로 콜라보를 한 것이 지금의 시국에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개인을 한 집단의 어떤 것으로 뭉그러뜨려 얘기한다는 것이 아닌, 각각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위안부 생존자분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김지은, 샤넬 밀러의 이름을 알리는 것은 모두 동일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성범죄의 생존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일상, 미래를 되찾길. 그 모든 것에서 박탈돼 ‘성범죄’의 굴레에 갇혀있을 것은 가해자면 충분하다. 

폭행은 결코 사적이지 않음에도 비난은 사적이다.- P391
역사는 당신이 소수였다고 해서, 누구도 당신을 믿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당신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보다 그건 사회가 굼떠서 당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만일 소수에 속한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으면, 자신들의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들의 행보에 발걸음을 맞추게 되리라.- P485
이번 생에서 당신이 안전을, 즐거움을,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알기에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의 인생이기에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했고, 지금 여기에 있다.-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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