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평생 가지고 갈 것 같은 어떤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길을 걷다가 주변에서 머리가 벗겨진 할아버지나 아저씨들은 드물게나마 볼 수 있지만 2030대에서 탈모에 대한 고민을 갖는 사람은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에서 원형탈모증에서 전신 탈모증을 앓게 된 화자는 중학교 여학생이다. 방학이 되면 어떤 색으로 머리를 염색할지, 파마할지 즐겁게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화자의 탈모 고민은 자꾸만 움츠러들게 된다. 친구들에게 말을 해봐도 스트레스로 인한 잠깐의 머리 빠짐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거나 오히려 놀림을 받기 일쑤다. 이런 화자의 고민은 그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머리카락이 사회의 아름다움, 정상의 기준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나도 머리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가는 편이라 예전부터 머리카락에 관심과 고민이 많았지만 그 생각들은 내 일상의 일부만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 심각한 정도까진 아니었다. 가발에 관한 얘기 역시도 항암치료를 받았던 유튜버를 구독하며 얼핏 듣긴 했지만 그 유튜버의 사례는 탈모완 거리가 있는 얘기였다. 그래서 탈모인들의 일상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한 것인데, 글을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 그들의 고통과 고민이 느껴졌다. 6개월마다 교체를 해줘야 하는 가발은 몇백만 원을 웃돈다. 그러나 어렵게 맞춘 가발도 바람이 불거나 격한 야외활동을 할 땐 온 신경을 머리에 쏟아야 했고 친구들과 함께 가는 수학여행에서도 누군가 자신의 민머리를 볼까 두려워 잠을 잘 때도 가발을 쓰고 불편하게 자야 했다. 또한 끊임없이 머리가 다시 자랄 가능성을 생각하며 스테로이드 주사, 면역억제제, 한의원 치료, 심지어 양파를 갈아 즙을 머리에 바르기까지 하는 시도를 해야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탈모인들의 그러한 고충을 알지 못했고 심지어 ‘머리가 별로 안 나면 그냥 머리를 미는 게 낫지 않나?’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 무지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 읽으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머리를 한 번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0.3밀리 샤프심처럼 부서져 내리며 스르륵 손을 빠져나가고, 명확한 완치법이 없는 난치병인 탈모를 평생 지니고 갈 사람의 마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내 무지로 인한 폭력을 누군가에게 휘두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글을 읽어 내려갔다. 200쪽 남짓한 글에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 있는 글이라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가 아프기 전에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짧게 읽은 시간에 반해 탈모에 대해 생각한 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탈모를 나와는 다른 세계의 얘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리를 가까이 두고 바라보게 한 책이었다.
**동녘 서포터즈 2기로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머리카락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개인적이면서도 지극히 공적인 물체가 아닐 수 없다
-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