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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불가능한 언어들이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날아오는 말의 급습 (복싱의 펀치처럼, 그야말로 스트레이트로 훅하고 들어오는)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 취약성, 정치적 입장이 그 말들의 공략점이다. 기(氣)가 막힌다는 표현은 얼마나 정확한가. 기막힘은 정신을 방전시키고, 순간 입을 얼어붙게 한다. 지독하게 무신경하고 무례한 말의 수신자는 말문이 막힌다. 목울대의 불덩이와 수족냉증은 사후 증상이다.
하지만 그 언어들은 정말로 대처 불가능했을까? 되감기가 반복된다. 왜 그때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했을까. 적절한 반응이 무엇이었을까. 내 삶의 방식에 관해 고해성사라도 해야 했을까. 복기와 자조와 이불킥의 연속. 발화자와 나 사이에 대양이 들어서고, 나는 이쪽 해안가에서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돌아선다.
내가 당한 말의 피습으로 시작했지만, 내가 뱉어낸 말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울화로 멍울져 있을 것이다. 고해사제의 얼굴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까. ‘어머! 왜?’라는 천진한 질문으로 상대를 당황케 한 적은 없었을까.
어떤 선택이든 배경에는 삶의 맥락이 있고, 복잡한 삶의 인과는 본인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자주 문장 하나로 타인의 삶 위로 거대한 물음표를 그린다. (왜 아이가 없어? 왜 고기 안 먹어? 왜 혼자 살아? 왜 화장을 안 해? 왜 서울로 이사 오지 않아..... 왜, 그렇게 살아? 왜, 살아? ) 청자의 신경 회로는 하나로 집결한다. 왜!! 내가 그걸 당신에게 설명해야하는데!
사적이든, 공적이든 대화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만남 전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만남 후에는 내가 한 말을 지나치게 복기하고 후회한다. 내 상황과 생각을 솔직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적절하게 응답하기도 어렵다.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통은 일대사이다. 인생의 많은 고(苦)가 타인과의 소통, 자신과의 소통 실패에서 온다. 빗나간 말로 누군가는 영원히 돌아서고, 명중한 말 한마디로 누군가는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 말, 들은 말 때문에 가슴에 바위를 얹고 평생 살아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창살 같은 말들의 틈입을 피해, 말이 들어올 틈새를 꽁꽁 틀어막고 칩거를 택한다. 말로 야기된 어떤 상황은 수습되지 않고 벌어진 상처 그대로 진행형으로 남는다. 생계와 생존이 위협받기도 한다.
이 책은 사교와 처세, 공적 합의 수단의 영역에서 만능키로 제시되는 소통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해부한다. 저자는 공사의 영역에서 수행되는 말하기와 듣기의 정치성에 주목하고 말하는 주체와 듣는 대상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역학 관계, 맥락의 상이함을 파고든다. 강자의 말하기와 약자의 말하기, 강자의 듣기와 약자의 듣기가 어떻게 다른가? 소통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언어는 누가 어떻게 규정하고 전파하는가. 저자는 언어의 불완전성과 정치성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나아가 말하기와 듣기에 동반되는 윤리와 책임에 대해 숙고한다.
저자가 분석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공사 영역을 막론하고 불균형한 권력 구도,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의 복잡한 함수, 삶의 지문이 다르게 새겨진 몸의 개별성, 오독과 오해의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언어의 한계, 선별적 듣기의 정치성. 여기에 자신을 늘 기득권자나 가해자가 아닌, 제3자나 피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습관적인 인식의 오류와 성찰의 태만까지. 저자는 사회적 권력 관계와 인식론적 한계로 소통이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미션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약자는 소통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저자는 무익한 소통 전략의 반복 수행으로 자기 검열, 자기 분열로 나날이 소진되는 약자가 부조리한 현실을 재해석하고 돌파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인 사회적 약자가 받은 질문 자체를 거부하거나, 화자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자기를 지키고, 화자에게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전략들을 제안한다.
약자가 소통 불가능의 이유를 직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이해로 전복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갱신된 앎은 약자들이 전선을 재사유하고 재편할 수 있는 사유의 문을 연다. 불통의 틈새가 열린다. 저자가 일관되게 말해온 부조리한 세계에 관한 공부와 앎. “약자의 인식론적 특권”은 약자의 자원이 된다. 이 앎을 바탕으로 약자는 생존을 도모함과 동시에 자기 돌봄, 자기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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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내가대화할수있을까#정희진#소통법#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