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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버지니아 울프
  • 15,030원 (10%830)
  • 2026-03-03
  • : 2,525

“말이여, 말이여! 너란 존재는 얼마나 무력한가! 너는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가! 늘 너무 넘치거나 늘 너무 모자라구나! 아, 침묵할 수 있다면! 아, 차라리 화가가 될 수 있다면! 아, 한마디로 카프가 될 수 있다면!”


이 문장은 신간 버지니아 울프의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중 화가 카프(Edmond Xavier Kapp)에 관한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이다. 작가로서 울프가 늘 직면했을 언어의 한계에 대한 고민, 그리고 회화의 직관적 표현력에 감탄, 화가 카프에 대한 존경이 엿보인다.




이 에세이는 국립 미술관과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서 있는 거리의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울프는 바다로 뻗은 곶처럼 서 있는 두 미술관을 중심으로 풍요로운 물살처럼 밀리고 빠지는 군중과 다종한 대중교통의 흐름을 격랑에 요동치는 해변의 풍경처럼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이 동적인 장면을 절벽처럼 마주하고 서 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으로 향하던 울프는 생각한다. “회화는 너무 조용하고, 너무 정적이다.” 변화무쌍한 현실과 대비해 미술관에 걸린 초상화의 침묵은 얼마나 정적인가. 하지만 울프는 회화의 이 압도하는 침묵에서 자아를 소멸시키고 정화시키는 힘을 발견한다. 웅장한 회화의 침묵은 감상자를 말의 “소란과 성가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언어를 상실해야만 열리는 세계의 진상이 있다고 느낀다. 시간이 갈수록 이 느낌은 더 짙어진다. ( 때문에 갈수록, 이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들에게 끌린다.) 어떤 장면이나 소리(음악) 앞에서 사고가 정지되고 어떤 틈을 본 순간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눈을 색으로 씻자”라고 울프는 말한다. 색의 바다 속에서 해체된 자아는 물감이 증류한 언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언어는 작가의 언어가 아니라고 울프는 쓴다. 종이를 물들이는 회화 언어의 절묘함을 작가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울프의 탄식처럼 늘 너무 넘치거나 늘 너무 모자란 언어. 소진되는 한편 무력한 언어에 대한 혐오와 의심. 울프가 징글징글하게 붙들고 싸웠던 것들.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슬아슬하고 팽팽하게 부여잡고 있던 언어의 가능성을 향한 신뢰와 도약. 그 사이에서 소진되고, 소생했던 울프. 내가 울프를 경외하고 사랑하는 이유다. 언어를 의심하지 않는 작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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