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 겨울에 읽으려고 일 년을 아껴둔 책. 울프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인 만큼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 울프의 마음속을 채웠을 의문과 문제의식, 동기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지적인 욕망을 간직한 채 철저히 가정의 천사 역할을 수행하는 캐서린. 캐서린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천문학이나 수학을 전공했겠지.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과 내면에 들끓는 지성의 요구들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아내려는 캐서린. 그 타협안은 이성애 결혼. 나는 캐서린이 비혼을 선택하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여성에게 가혹했던 시대의 한계 안에서 자기에게 충실하려는 캐서린의 심리적 분열과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분투를 울프는 집요하게 따라간다.
극적인 반전으로 독자에게 일시적인 쾌감이나 해방감을 주기보다 인물의 구체적인 고뇌와 갈등, 망설임 자체를 극세밀화처럼 묘사하는 울프. 따라서 인물들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이야기 전개보다 인물의 내면 풍경이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어떻게 이렇게 내밀한 심리의 흐름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캐서린이 메리와 연인이 되기를 바랐다. 자신이 선택한 가치를 좇는 여성. 자기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꼭 움켜쥐고 자기가 선택한 길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여성. 캐서린, 메리, 데넘 사이에 유지되는 거리들이 좋았다. 타인에 대해 넘겨짚지 않고, 무심할 줄 아는, 존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끊임없이 여성에게 훈계하고, 맨스플레인하는 허영에 찌든 남성도 등장한다. 울프는 이 남성을 통해 여성을 미숙한 존재로 규정하고 통제하고 가스라이팅하는 거의 전형화된 남성들의 행태를 자세히 묘사한다. 그럼에도 다른 인물들은 이 남성을 끝까지 존중한다. )
“슬픔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슬픔의 고통은 그녀가 자신을 배반하는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아, 이 슬픔을 알지. 이 날카로운 슬픔. 내가 나를 배반했을 때의 그 굴욕감. 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인물(메리)은 돌아선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눈물은 억제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은 그럴 것이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캐서린을 대면할 것이고 좌절된 용기에서 만회할 수 있는 것을 만회할 것이다.”
슬픔과 굴욕감에 매몰되지 않고, 만회할 수 있는 것을 만회할 것이라고 현실을 직시하는 여성. 울프의 여성답다.
2.
“나는 계산을 해서 뭔가를 논하고 싶어 - 인간과 관련 없는 뭔가를 말이야. 나는 특별히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헨리, 나는 엉터리야 - 너희들 모두가 나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야. 나는 가정적이지도 않고, 혹은 아주 현실적이거나 분별 있지도 않아. 정말이야. 그리고 만약 내가 어떤 것을 계산하고 망원경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래서 산술을 논해야 하고 내가 틀린 부분을 알게 된다면, 나는 완벽하게 행복할 거야.” 257
3.
"어떻게 당신은 감정에 대해서만 계속 얘기해요! 정말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말하지 않고 늘 걱정하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나요?" 316
너무 웃겼던 장면. 감정을 잘 말하지 않는 캐서린의 성격에 대해 약혼자였던 남성(여성을 자신의 훈육이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바로 그 남성)이 또 불만을 얘기하자 캐서린이 갑자기 저렇게 소리친다. 이성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평가해온 남성의 유치한 실상을 한 장면으로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울프.
"그녀는 억지로 말할 수 없었다." 317
시원하다.
4.
이 금빛 테두리가 소멸된다면, 만약 삶이 더 이상 환상으로 에워싸여지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것이 정말 환상이었을까?) 그러면 그 삶은 최후까지 견디기에 너무 황량한 일일 것이다. 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