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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천재>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천재들이 호흡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는 것이다.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유럽사의 격변의 장소.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듯하다. 저자가 묘사하는 한 시대의 모순과 질적인 변화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역사 자체에 다시 호기심을 갖게 됐다. 인물을 읽다보니, 시대가 읽혔다. 머릿속에 전구불이 번쩍하고 들어오는 순간들.
모순덩어리 루소의 사유의 궤적을 통해 본 18세기의 사상의 변천사,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밝혀낸 푸코가 늘 현장을 지켰던 20세기 중반의 정치적 소용돌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천재의 요람으로 방문해보는 세기 변환기의 빈, 그가 참여한 양차 세계대전, 나쓰메 소세키의 변화와 식민지 남성성으로 돌아본 근대 일본, 그리고 기시감에 빠져드는 푸셰의 프랑스 혁명, 네차예프의 러시아 제국, 그리고 히틀러와 2차 세계대전, 그 광기의 역사.
국민의회, 국민공회, 총재정부, 통령정부... 나폴레옹 황제 즉위. 중학교 시절, 시험을 위해 암기했던 프랑스 혁명. 현재와 단절된 박제된 역사였다. 저자가 기록하는 희대의 기회주의자 푸셰의 일대기로 프랑스 혁명을 되돌아보니 정말 너무 흥미로웠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많은 책과 영화로도 이해가 어려웠던 것이 이 장을 읽으며 드디어 흐름이 보였다.
문제적 인간의 탄생, 그들이 사유와 실천을 확장해가는 과정. 이 모든 극적 변화를 역사적 조건과의 상관관계로 밀도 높게 설명하는 저자의 묘사와 분석이 놀랍도록 정치하다. 그 문장 또한 깊이가 남달라 각각의 장이 매우 공들여 잘 만든 영화 한 편씩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문장을 읽는 동시에 머릿속에 영사기가 돌아가며 손에 잡힐 듯 맥동하는 시대와 인물의 일대기가 전해진다.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감할 수 있는 시대와 인물이 나누는 서사시가 철학적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호기심에 이 문제적 인물들과 그 시대를 다룬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간청하지 않고 명령하고 선포하고 자극하고 억센 손아귀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의 말들은 대중의 은밀한 소망, 곧 복수욕, 증오심, 원한 감정에 아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마치 신탁을 말하는 자의 당당한 권위로 대중의 비위를 맞추었다. 대중이 듣고자 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 )의 연설장은 빈곤과 궁핍과 좌절의 시대에 휩쓸린 대중의 자기 확인, 자기 탐닉의 현장이었다.” 336면
- ( )안에 들어갈 그는 누구일까. 북아메리카의 그, 광화문 광장 연단 위에 섰던 무수한 그들. 이스라엘의 그. 구치소에 있는 그들. 러시아의 그, 00인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한다는 그들, 대선토론에서 여성혐오로 판세를 뒤집으려 했던 그... 그리고 무수한 그들. 이 모든 그들이 ( )안에 들어가려 경쟁하는 듯하다.
“의회주의적 방법을 거부하고 급진적, 혁명적 전망을 제시했다. 대중의 힘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정권을 타도하고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336면
-의회를 해산시키고, 대중을 선동해 그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했던 그는 누구일까?
“( ) 주변에서 ‘지도자 숭배’가 시작됐다. .... 중략 .... ( )를 구세주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337면
- 손에 왕자를 쓰고 대선 토론회에 나오고,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이란 생일 노래를 들었던 그는 누구인가?
“탁월한 선동가는 다시 한 번 법정을 자신의 선전장으로 바꾸었다. 내란 수괴로 법정에 선 ( )는 자신에게 부과된 모든 죄목을 스스로 떠맡아 그것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의로운 거사로 바꾸어냈다.” 342
- 이 내란 수괴는 우리가 아는 그 내란 수괴인가?
“( )는 내란죄로 (중략)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중략)로 이송됐다. ( )는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거대한 회의실에서 추종자들을 놓고 강연했고, 하루 여섯 시간씩 방문객을 맞았다. (중략)은 사실 ( )당 중앙당사나 다름없었다.” 342
- 구치소에서 특별 혜택을 누리며 추종자들을 선동하는 그는 누구인가?
“그는 대중을 설득하려면 하나의 적만을 제시하라고 말한다.” 344면
- 앞뒤로 이어지지만 다음 독자를 위해 멈춘다. ( )에 들어갈 인물은?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하지만 히틀러다. 하지만 저 문장들의 주어 자리에 다른 이름이 어른거린다. 히틀러가 선전과 선동으로 대중을 장악하고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은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겪은 일들과 너무도 유사해, 읽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이 불안이 매우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라 더 두려웠다. (오늘 뉴스를 보자. 여전히 그들은 태연하게 역사를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혐오로 대중을 선동하고, 원색적인 선전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세히 분석하고 있듯이 히틀러의 폭력은 대중의 결핍과 소외에 뿌리내린 박탈감과 원한을 동력으로 삼았다.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해소시킬 분출구를 그는 혐오에서 찾았다. “청중의 흥분과 전율과 열광은 그에게로 다시 돌아와 더 사나운 고발의 폭포수가 되었다.” 약자에 대한 혐오로 화력을 얻고, 다시 약자에게 그 화력을 분사하는 정치적 전략은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 됐다.
저자는 히틀러주의의 교과서인 <나의 투쟁>의 집필 배경, 과정, 그 내용 또한 자세히 다룬다. 저자의 분석을 통해 <나의 투쟁>을 살펴보면 히틀러는 매우 철저하고 치밀한 광기의 소유자였다. 폭력적 광기가 인간성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실행력을 만나면 세계에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 히틀러는 예증한다. 그런데 그 히틀러, 그 <나의 투쟁>의 망령이 지금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지 않은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 중인 000 전국방장관이 즐겨 읽은 책이 <나의 투쟁>이라는 건 12.3 내란과 그 전후의 시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내란 혐의로 재판 중인 전직 대통령의 그간 행적에서 드러나는 세계관과 전국방장관의 <나의 투쟁>은 우리가 호흡하는 시대에 어떤 광기가 깊게 침윤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히틀러 장은 마치 예언서를 읽는 듯했다. 히틀러와 나치당이 치밀한 선전 전략으로 대중을 선동해 성장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해 독재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최근 몇 년 동안 목격한 정치의 흐름과 너무나 유사하다.
1923년 내란죄로 수감된 히틀러는 1924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출감했다. (“당은 거의 종교적 공동체로 변신했다”) 나치당 재창설 대회를 연 그는 나치당을 제국의회에 입성시키고, 1933년에는 총리가 되고, 1934년 1인 지배 총통국가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뒤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참으로 위대한 민중 지도자의 기술이란 민중의 관심을 분열시키지 않고 언제나 어떤 유일한 적에게 집중시키는 데 있다. 민중의 투쟁 의지의 이용이 집중적이면 집중적일수록 운동의 흡입력은 점점 커지고 타격의 강도도 더해지는 것이다.” (344면 히틀러, 저자 인용)
비극의 과거를 과거로만 읽을 수 있는 독자는 복되다. 폭력의 광기가 무덤 속에 있기를 거부하고 대기 속을 떠돌며 후대의 정신에 뿌리 내리고, 개화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가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희화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감정적이고, 제멋대로인 멍청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확실한 신념 아래 치밀한 전략과 결집력을 갖췄다. 내란 세력의 강고한 심층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역사의 반복이 우리 세대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이 책은 확인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