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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 로베르트 발저
  • 15,300원 (10%850)
  • 2025-07-18
  • : 880

무수한 잎사귀를 품은 숲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향기로운 나무들 사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꿈을 꾸기 위해.

<숲에서, 145면>


이 시를 나는 이렇게 고쳐 써 본다.

무수한 잎사귀를 품은 이 책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향기로운 문장들 사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꿈을 꾸기 위해.


발저 시의 한 연을 읽었을 뿐인데 청량한 산들바람이 몸 안팎을 휘감고 지나간다. 발저의 마법이 지나간 것이다. 우리 내면의 명랑하고 맑은 샘물. 발저의 소박한 문장은 그 샘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마법의 바람이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 샘물은 돌연 밖으로 찰랑대며 흘러넘친다. 아, 신선한 물의 정령! 숲의 정령이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 발저의 문장은 어김없이 그 정령들을 깨운다. 가장 작은 숨결로, 가장 작은 빛의 조각으로.



<전나무 가지,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 푸르고 작아서 아름다운 것들. 이 사랑스런 조합의 책 제목은 이 책에 수록된 짧은 산문의 타이틀이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글이 사람의 마음을 갑작스레 환하게 밝힐 수 있는지. 우듬지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 같은 글이다. ‘당신이 만약 지치고, 낙담하고, 슬프다면 이 편지를 읽어보시오’하고, 사려 깊은 발저가 깊은 숲속 키 큰 나무 옹이 사이에 꼭꼭 접어 넣어둔 편지 같다. 발저의 다정한 손길이 느껴지는 화사한 에세이이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발저의 그늘지고 울창한 숲으로 성큼 들어와 버렸다. 지글지글 끓는 폭염의 나날, 나는 발저와 함께 사계절 변화무쌍한 숲의 구석구석을 걸을 예정이다. “햇살이 노릇노릇” 걸려 있는 한 낮에도, “만물에 무언가 신성한 것”이 내려앉은 밤에도, “달콤하면서도 차가운” 새벽에도 숲 속을 걸을 것이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빛을 흩뿌려 반짝이게 하는 발저와의 숲 산책이라니.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지······”



“나는 형언할 수 없이 즐거운 영혼과 함께 아름답고 경건한 어둠 속을 계속 걸어갔다.” (74면)



이 아름다운 책에는 몇 점의 귀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발저의 형인 화가 카를 발저와 동시대 화가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그림들이다. 발저의 시선과 정신에 담긴 스위스와 독일의 숲과 호수, 산과 대기의 표정과 정서를 간직한 작품들이라 독서의 감흥과 여운을 더해 준다. 인상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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