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 28일 10시에 그가 특검에 출석했다. 나는 어쩌자고 TV 생중계로 그 모습을 보려했을까. 특검 출석시간, 출석방식을 두고 실랑이를 벌여 어김없이 쓴물을 올라오게 한 인사가 아닌가. 나중에 뉴스를 봐도 될 것을 왜 주말 오전 그 낯짝을 보겠다고 리모컨을 눌렀나. 불법 계엄령 이후 나는 집요하게 생중계되는 현장들을 쫓는다. 밤을 새우고, 예정된 시간들을 기억한다. 마치 그 현장들을 내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쫓는 것은 무엇일까.
차에서 내린 그는 사적인 용무를 처리하려고 관공서에 들른 민원인처럼 굳은 얼굴로 검찰청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한 국가를 대표하던 공인의 모습은 없다. 성가신 사적 용무를 앞둔 사인이 취재진들 사이로 무심히 사라졌다.
어쩌면 불법계엄령도, 탄핵심판도, 내란재판도, 내란수사도 그에게는 정말 지극히 사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 그 냉담하고 희멀건 얼굴을 본 순간, 이런 생각을 처음 했다. 국가를 내 손아귀에 넣겠다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네. 그의 사고는 여기서 멈춰있는 것 같다. 검찰 총장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가 그러고 싶은데, ‘내’ 마음처럼 안 되네. 왜 오라가라하고, 왜들 이렇게 시끄럽게 굴지. 내 개인적인 일에 왜들 저렇게 난리야. 그와 그 배우자는 정말 줄곧 이렇게 생각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는다. 명치 부분이 묵직하다. 오늘 아침 본 그의 얼굴과 이 책이 복기시키는 무수한 날들이 겹쳐진다. 담금질을 당하는 것 같았던 밤과 낮이 그 말끔한 외관과 냉담한 표정에 어른거린다. 뭉근한 울화가 차오른다. 그는 이런 마음들을 모른다. 모르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들의 법과 우리가 아는 법 사이의 괴리를 다스리려고, 황정은 작가는 책상 근처에 고사리 화분을 잔뜩 가져다두었다고 한다. 나는 작가의 일기를 읽는다. 나를 통과하는 이 모난 감정들의 연원을 거슬러 오른다. 그 날도, 이 일기를 읽는 지금도 혼자가 아니라고, 작가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초법적 존재들, 초법적 운명 공동체들.. (중략)..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 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되는, 되니까 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는 따로 있다."
작은 일기, 112-113면, 황정은
2.
“세면대 밸브에서 물 새는 걸 발견했다. (중략) 오후 열시 삼십사분 계엄”
작은 일기, 8-9면, 황정은
그 날의 작가의 일기를 읽으며 같은 날 내 일기를 찾아봤다. 12월 3일 두 줄, 12월 4일 한 줄.
한 것, 본 것이 일기에 쓰는 전부인데 그마저도 없다. 공중파 TV를 통해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처음부터 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보게 됐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보는 내내 황망함과 더불어 내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일어날 변화들이 한 단계씩 높아지는 음계처럼 신호음을 높여가며 주마등으로 지나갔다.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A, B, C, D로 증폭되어 머릿속으로 퍼져갔다. 그것은 이미 체감되는 공포였다.
3.
이 책을 처음 받아 탁자 위에 놓을 때, 책의 낱장들이 펄럭인 짧은 순간 스친 페이지에 이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해왔던 생각. 나는 손상 됐고, 그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 하지만 그걸 느낌과 동시에, 그걸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 부끄러웠다.
‘손상’이라는 단어는 ‘손상 되지 않은 상태’를 전제하는데, ‘손상’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볼수록 생각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인간은 태생부터 손상된 존재.... 손상은 존재의 양식. 이어지고 이어지다, 돌연 멈추게 된다.
2009년, 2014년, 2022. 특정한 방식으로 다르게 손상됐다고 느끼기 시작된 것은 저 해들과 관련 있다.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변해간다. 손상시키고, 손상된다. 손상된 기억만을 간직하려는 관성이 나의 악이다.
저 해들에 일어난 사건들이 나를 손상시켰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역사에는 얼마나 경악할 말한 참극이 많았나. 하지만 지나간 참극들이 당면한 비극의 극악함과 참혹함을 경감시키지 않는다.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실시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 인간의 어떤 면을 봐버린 것. 나도 인간이라는 것. 2024년 12월 3일. 어떤 문장을 쓰려는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작가는 탄핵 집회에 참여해 생수를 나눠 준 자영업자의 울음을 기록하며 “그와 내가 같은 날(刀)에 베였다”라고 24년 12월 19일 일기에 썼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작가의 이 문장에 위로받았다. 이렇게 고백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4.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 말이다. (중략) 그보다는 사람이, 사람들이 어쩌다 혹은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 멍청하게. 그중에 악이 있다.”
작은 일기, 64-64면, 황정은
불법 계엄을 일으킨 사람과 그 배우자,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공식적 사과를 하지 않고 그를 비호한 정당,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조직들과 그들의 오랜 행적들.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는 그 행태들을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외치곤 했다. ‘저 악마들!’ 그리곤 상념에 빠져 들었다. ‘악마들이라고? 나이브하긴. 저들의 행태를 악을 빼놓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어? 그냥 범법자? 세계가 법에 의해 굴러가는 기계라는 거야? ....악은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야, 악을 천상에서 끌어내려. 인간 세계의 악행을 악이라고 부르면 왜 안 되는데?.. 왜 하필 악마야? 종교인이야? 유치하긴.. 악은.... 그냥 악한들? 그럼 화가 안 풀리는데!.. 악!!!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어김없이 또 ‘저 악마들’, 하게 된다.
5.
<작은 일기>에서 작가는 가끔 쓰고 있는 원고의 진행 상황을 기록한다. <창작과 비평> 2025 봄에 실린 작가의 단편이 떠올랐다. 작가가 이 단편을 쓰고 있을 때가 이즈음이겠구나, 혼자 짐작해보고 다시 읽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달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영상들, 그러다 보이는 것에도 들리는 것에도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안심하게 만드는 영상들. 쉽게 잠의 배음이 되는 소리들”
246-247면, 문제없는, 하루, <창작과 비평 2025봄, 황정은
전쟁과 폭우와 폭설로 바깥은 아수라장인데, 이미지와 소리의 멀티버스 터널 속에 잠들어 가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재난의 굉음들. 하지만 바깥은 없다. 그 터널 속이 전부이다. 잠들면 안 된다. 공기를 밀어내며 다가오는 어떤 것을 직시하며 경적을 울리는 존재들이 이 단편에는 있다.
“터널에 들어선 차들이 실린더 속 피스톤처럼 공기를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262면, 문제없는, 하루, <창작과 비평 2025봄>, 황정은
6.
스탠드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안에 친구와 나란히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는 친구의 이야기를, 나는 내 이야기를. 밤이 깊어 잠이 저 가까운 곳에 웅크리고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본다. 끊길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 아니 독백들. 잠의 숨결 아래 체면에 걸린 듯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한다. 서로의 얘기에 답해야 한다는 어떤 의식도 없이. 단속적으로, 그러나 무언가를 내려놓고, 잠결에 내쉬는 날숨 같은 저 깊은 곳 파편들.
그러다 먼 후일, 친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서야 친구에게 답하고 싶어진다. 친구는 옆에 없는데. 그가 마치 듣는 것처럼 속으로 말하게 된다. 뒤 늦은 대화가 이어진다.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으며 오래 전 그 방안에 누워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그랬어. 그때 그랬어. 작가와의 대화도 그렇게 문득 문득 이어져 계속될 것이다.
후일 이 작은 일기를 다시 읽으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작가의 일기를 읽으며, 지금처럼 그 날짜의 내 일기를 다시 들춰볼 것이다. 어떤 기억은 공유된다. 기록된 기억들은 더 멀리 날아서 더 많은 기억들과 조우한다.
하나의 사건이 각자에게 전혀 다른 해석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윤석열을 지지했던 이들도 <작은 일기>를 써서 출판했으면 한다. 후대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할 권리가 있으니까.
(후대까지 갈 것 없이 '000, again'을 외쳤던 이들. 그들의 일기가 나도 궁금하다. 그들은 어떤 신념, 어떤 마음을 가졌던 걸까.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움직인 것은. 서부 지법 폭동을 일으켰던 그 결기로 큰 일기라도 좋으니 출판할 용기를 내길 바란다.)
12.3 내란의 아카이빙이 이렇게 시작됐다. 작가는 사적 기록을 공적 기억으로 연결한다. 당신의 기억과 독자의 기억이 만나 대화의 장이 열린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존재들이다. 무수히 퍼져나갈 이 대화의 씨줄과 날줄이 교직해 12.3 내란을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 분노와 저항, 슬픔과 안도로 수놓인 역사가 짜여 질 것이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작가가 말한다. 내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증명해 가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25년 7월 10일 새벽 그가 재구속 됐다. 잘된 일이다.
#가제본서평단 # 도서제공 #작은일기 # 황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