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게 된 후기에서, <바그너의 경우>에 두 개의 추신과 하나의 후기를 덧붙인 니체에 대해 제프 다이어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 영원회귀라는 폐쇄적인 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의 형식적인 표현”이라고 원주를 달아놓았다. 묘하게 설득당하며 웃을 수밖에. 그렇지 어떤 강박, 충동으로서의 글쓰기.
이어서 제프 다이어는 10년 전 <가디언>지에 본인이 쓴 문장을 인용한다. “글쓰기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된 날, 너무도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 든 나머지 그것을 완벽한 행복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날을 늦추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가 니체의 글쓰기 속에 내장된 강박을 알아챈 비밀이 이렇게 고백된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을 위해 아껴둔 그의 계획을 읽고 또 웃는다. 그 계획과 관련해 그가 <지속의 순간들>에 기록한 글에 나도 우선 만족한다. “그가 있는 이곳은 그가 언젠가 도착했을 그 어디만큼 좋았다. 일단 그런 결론에 이르고 나면, 필요한 베개는 오직 단단한 땅 그 자체뿐이다.”
“존 버거가 각본과 주연을 맡은 영화 <나를 집까지 데려자줘>(1993)에는 극중 버거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하는 놀라운 순간이 있다.” 나도 작가가 인용한 이 문장에 멈칫했다. 체리스가 발견한 죽은 사람이 누운 콜로라도의 사막은 그런 땅이었을까.
어제 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도어즈의 <끝The End>를 들었다. 반복듣기로 들었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직전에 마트 키오스크 계산대 위에서 가져온 맥주를 무르고, 오렌지 주스 1.8L만 계산하고 가져온 나를 칭찬했다. <끝The End>를 배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오렌지 주스를 맥주처럼 마셔대는 나를 칭찬, 아니 애도했다. 도어즈의 다른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참았다. “음악의 신 디오니소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니까. 편의점 주류 냉장고 앞으로 데려갈 갈 확률이 아주 높으니까.
“황혼이 슬그머니 밤으로 깊어지는” 어둠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 그 순간들을 담아낸다. 이 책에 목차가 없는 것이 납득된다. 기우는 석양빛을 어떻게 일별할 수 있을까. 20대 중반 짐 모리슨의 사라짐은 황혼이 단지 시간의 레일에 따라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하간 흥미로운 주제이고, 흥미로운 독서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