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이 아시아에서 즐기거나 큰돈을 갖고 있거나 평온하게 살아가면 수상쩍은 일을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해. 그래서 나는 사야카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준 거야. 우리는 성실하게 일하기 위해 홍콩에 온 게 아니야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홍콩에 왔어.”
카라마,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4면
이 책 덕분에 30년을 미루고 미룬 영화 <중경삼림>을 봤다. 중경삼림은 청킹맨션(중경빌딩)과 그 주변의 빌딜 숲이라는 의미. 책을 받고 청킹맨션에 대해 알아보니, 홍콩의 근현대사가 그야말로 압축된 장소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쉴 새 없이 오가는 혼종의 장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떤 얼굴들을 찾고 있다. 카라마는 2000년대에 초엽에 홍콩에 왔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 그는 아직 탄자니아에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그가 홍콩에 도착한 것은 조금 후이다. 그가 곧 머물게 될 장소를 내가 2025년에 먼저, 아니 나중에, 보고 있다.
영화 속 중경삼림은 고이기를 거부하며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공간이다. 아래의 사야카의 분석 속 표현처럼 영화 속에는 ‘만만치 않은 타자’들이 수없이 스쳐간다. 빠르게 스쳐가는 조명의 빛살들처럼 명멸하는 ‘미지의 가능성’에서 우발적인 응답들을 발견해 내고, 이 응답들로 점멸하는 네온 불빛 같은 커먼즈를 구축한 청킹맨션의 보스와 그의 동료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더더더 ^^
“신기하게도 이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융통성’ 같은 것이 관찰된다. 이 ‘융통성’은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의해, 이들이 타자와 살아가는 가운데 길러온 지혜에 의해 저절로 재귀적으로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6면
“그들의 상호 부조는 동포에 대한 지원을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하는 사회 규범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가진 미지의 가능성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함한 자신의 기회를 발견해내려는 ‘만만치 않은 타자’의 우발적인 응답에 달려 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2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