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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woman님의 서재
  • 엄마 같지 않은 엄마
  • 세라 터너
  • 12,600원 (10%700)
  • 2016-12-01
  • : 182

 

나는 길거리에서 아기만 봐도 눈에서 꿀이 떨어질 만큼 아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거지같은 복지는 일단 차치하고)

<맘충>이니 뭐니 하는 천박한 언행이 잘도 돌고 도는 나라.

모성애가 없(어 보이)는 여자들을 향해 아낌없는 삿대질을 보내는 나라.

이런 나라에 살면서 여전히 난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뿌리 깊은 믿음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이 거지같은 나라에서 그런 위대한 존재가 되기도 싫고 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애한테 미안해서다.

 

 

 

 

엄마가 돼본 적도, 될 생각도 없는 나에게 처음 이 책은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케이원 경기 링 밖에 팔짱 끼고 비스듬히 다리 꼬고 앉은 관중 모드였달까.

 

아, 이렇게나 고생하시는군요?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과정이 엿같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역시 애를 안 낳길 잘했어요 데헷.)

 

 

 

 

그런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수록 마치 소설을 읽듯 과한 감정몰입이 시작되더니

미친년처럼 웃고 울다 급기야는 아이 키우는 엄마들과 신나게 육아 수다를 떠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언니나 친구들이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와도,

직접 겪어본 일이 아니니 그저 정말 힘들겠거니 지레짐작만 할 뿐 피부로 와 닿진 않았다.

 

길에서 아이에게 불친절하게 구는 엄마를 보면 내 엄마도 아닌데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엄마들을 좀 더 너그러운 눈으로 보게 됐다.

<겪어보지 못한 그들의 고통>에 관해 나 역시 충분히 겸허하지 못했음을 인지한 거다.

 

 

 

 

단 5분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엄마들에게 가하는 폭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많은지 놀라게 된다.

 

엄마의 모성애는 왜 당연한가?

엄마는 왜 실수를 하면 안 되는가?

엄마는 왜 당연히 아이에게 완벽해야 하는가?

왜 애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지랄, 육아휴직을 내도 지랄인가?

     

어디서 들었는데 영국 사회도 한국 못지않게 엄마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보수적이란다.

그래서 영국 엄마들이 쌍수를 들고 이 책을 찬양했나 보다.

또 그래서 한국 엄마들에게도 통할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책을 보며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엄마들 역시 그 숱한 시선의 그물망에 갇혀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는 거다.

 

내가 왜 제왕절개를 했는지,

내가 왜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지,

애가 왜 이렇게 밤낮 울어젖히는지,

저 애가 왜 지금 병원 로비 바닥에 드러누워 진상을 부리는지,

 

엄마들은 세상 모든 사람,

아프리카 원주민들까지 납득시킬 기세로 변명에 변명을 되풀이한다.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검증받으려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사정을 인정받으려는 엄마들의 마음이

애처롭고 애달파 몇 차례나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심정을 밝혔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 가진 엄마들에 대한 선망을 지병처럼 품고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보며 ‘아이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커진 만큼,

“그래도 엄마로서의 삶은 정말 끝내준다”는 작가가 만난 세상,

아이로 인해 달라진 전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도 커졌다.

(더불어 엄마에 대한 감사와 사랑도 새삼 불어났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육아에 대해 제대로 된 개념을 탑재하지 못한 아빠들,

철들고 나서도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부르짖는 자식들,

밑도 끝도 없이 엄마들에게 의무만 강요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 이마에 이 책 모서리를 명중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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