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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일곱. 결혼에 대한 관심도 고민도 없는 내가 이 책을 고른 건
<지금 당신 곁의 파트너가 최고의 파트너>라는 다소 답답한 문구 때문이었다.
이는 모든 갈등의 원인은 결국 내게 있다는 평소의 생각과 맞닿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 내내 딱지처럼 앉은 의문 하나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갈등이 생기면 떨쳐내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냔 말이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아내가 결혼했다>
<나는 일부일처제가 싫다>
구린내 나는 이중성을 품고 껍데기만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에 야유라도 보내는 듯
영화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이 보수적이고 틀에 박힌 제도의 무용론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따금 이런 목소리들이 오히려 우리의 감성과 인식을 종용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잘 봐, 일부일처제는 이처럼 구멍이 많은 제도야. 인간이, 감정적으로 이토록 모순 많은 동물이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뭐? 할 수 있다고? 에이... 못할걸?"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고작 이십대 초반에 '나도 고건 못하겠네'라고 단정지었더랬다.
한데 이 책을 보며 곰곰 따져보니
그건 아무런 전제도 없는 단정, 포기를 위한 포기였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연애 시절 "평생 너만 사랑할게"라고 감상에 젖어 약속한 연인에 대한 책임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하자"고 약속한 배우자에 대한 책임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의 사랑에 대한 책임이다.
책 표지 띠지에 적힌 작가의 말은 다소 도전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작가는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이혼을 입에 올리는 것을 반대하되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을 억지스레 지속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
그것을 되찾으면 결혼 생활의 의미 역시 자연스레 되돌아온다고.
더불어 그 책임은 무겁고 갑갑한 갑옷이 아닌,
아주 아주 달콤하고 아름다운 용기임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관계 맺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서'를 알려주는 것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 아름답다.
첫사랑에 목매는 것, 아름답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 불륜도 때로 아름답다.
하지만 제아무리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도
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랑 그 뒤꽁무니만 뒤쫓다가는 언제든 흔들리게 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사람,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은 결혼 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는 개개인의 삶의 자세를 다룬 처세서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미혼이든 기혼이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듯하다.
내 경우 이 책을 통해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한 예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계기가 됐다.
꺼억~ 오랜만에 좋은 책 한 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