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살리는 재주가 있으셨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면 못 보던 꽃이 피어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눈길을 주는 걸 아시곤 곁에 다가와 자랑스레 말하곤 하셨다. 누가 아파트 화단에 버린 화분을 주워 와서 살렸다고.
그렇게 무엇이든 살리는 재주가 있으시니 이 못난 아들도 어디 가서 겨우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려내신 게 분명하다. 어머니는 평생 성실히 일하셨고, 이제는 조금 후회하신다. 자기 자신을 조금만 더 돌아볼 걸, 조금만 더 즐기고 누릴 걸. 조금 더 행복할 걸. 그런 헛헛함이 있어서인지 어머니 속을 썩이지 않는 식물과 꽃들은 그 어느 집의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마땅히 마음 둘 곳 없으니 그 마음을 쏟아내었을 것이고, 식물도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존재들이기에 버려진 것들마저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피어났다.
서인주 작가의 글은 어머니가 정성으로 길러낸 식물이나 꽃을 떠올리게 한다. 들어줄 이 없고 토해낼 곳 없으니 저자는 자신에게는 가시를 들이대지 않는 꽃처럼 아름다운 글들을 꾸준히 써왔다. 작가의 남편은 플랜B 따위는 없이 퇴사했고, 아이는 셋인데 아뿔싸, 아들만 셋이다.
목양견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양치기개는 보더콜리다. 실로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자랑하는데, 그런 보더콜리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견종이 있다. 바로 보더콜리 새끼다. 아들이란 필시 보더콜리 새끼와 견줄만 한데, 그런 존재가 셋이라는 건 그들을 풀어놓을 광활한 목장이 있거나 일꾼이 따로 있지 않은 이상 매일 죽었다 다음 날 겨우 부활하는 일이다. 육아만도 지치는데 저자는 이제 가장이다. 인수인계 과정 같은 것도 없이 남편은 가장의 직책을 놓아버렸고, 아들 셋의 돌반지도 부인 몰래 팔아버렸고, 전업주부 역할도 영 신통치 않고, 보더콜리라는 정체성을 포기한 개가 하루 아침에 스스로를 고양이라 선언한 후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혼자 노는 것처럼 남편도 변해 버렸다. 가재는 게 편이니 웬만하면 남편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으니 입을 닫을 뿐이다. 결국 작가는 가정을 건사하고자 가장이 되었다. 보더콜리가 고양이가 되었으니, 스스로 보더콜리의 활동량으로 자신의 목장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저자가 꽃처럼 길러낸 문장은 단단하고 사유는 깊다. 누구라도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축축 처지지 않으니 다행이고 위로가 된다. 어떻게든 내일의 문고리를 열어젖히는 저자의 에너지는 읽는 이에게 작은 불씨를 건네는 기분이다. 불씨가 활활 타올라 희망이 될 수도 있고, 불쏘시개가 없어 이내 꺼져버릴지도 모르지만, 불씨의 온기만큼은 누구에게나 고루 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읽으며 떠올린 책이 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이다. 밥벌이를 하는 일터를 글 속으로 옮겨 많은 이로부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일터는 본디 지겨운 곳이지만 일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오니 읽는 이마다 공감하고 나만 이렇게 소모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구나 싶어 안도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한국문학에서 직장은 그다지 선호되는 배경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직장과 직장인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어떤 담론이나 철학보다도 직장과 직장인의 모습이 무시할 수 없는 삶의 모습임을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서인주 작가의 <면접 보러 가서 만난 여자>는 직장보다 더 소외된 경단녀나 이력서 수백 통을 뿌려야하는 삶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모두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는, 조금은 맞닥뜨리기 불편한 배경일 수도 있다. 한국 문학이 흔해 빠진 일터의 이야기를 소설로 끌어들이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흔한 삶, 직장인의 삶은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경단녀나 아들 셋 엄마의 고군분투기는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일터보다 더 어두운 곳, 조명 밖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기 자리 하나 없이 자신의 컷을 기다리는 보조출연자처럼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중이 작다고 그녀의 연기가 작은 것은 아니다. 버려진 화분이라고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이 아니듯, 어떤 인연이나 기회로 인해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새로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본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뜻밖의 단편 소설로, 또 어쩌면 아들 셋의 엄마가 쓴 동화로 서인주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없는 시련은 없으니 가시밭길 뒤에는 꽃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을 기대하는 이에게 추천할만한 온기 어린 불씨 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