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저의
『아주 가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를 읽고
이제 나이 칠십을 넘어섰으니 죽음도 머지 않았다.
주변에서 또는 친구들의 부음 소식도 들려오고 있으니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해야 할 시점에 온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 하면 각인되어 있는 슬픈 추억의 죽음이 떠오르곤 한다.
바로 나의 어린 아들의 죽음이다.
지금 딸 3인데 원래 큰딸 밑에 아들이어서 딸 하나 아들 하나로 마감하려 했었다.
그런데 아들이 병원에서 출산하고서 집으로 돌아와서 양육하는 과정에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수그러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심해지며 차도가 없자 동네 병원 의사가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 받기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종합진단을 했는데 결과가 감기가 아니라 심장병 증세로 나타난 것이다.
심장병도 특별한 경우라는 것이다. 일단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아직 말도 못하고 그저 웃기만 하는 둥그런 얼굴의 아들 모습을 보면서 병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무려 6개월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지켜보아야 하는 부모의 모습과 아들의 모습은 뭐라 할 수 없는 마음 소통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오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심장병으로 평생을 안고 힘들게 살아가느니 보다는 지금 힘들더라도 어려서 수술로 한 번 도전해보자라는 결단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수술 날짜가 잡혀 부모야 모든 걸 거는 간절한 바람으로 기원을 하였다.
수술 당일 9시경 수술 들어간 아들이 하루 종일 수술에 시달리면서 부디 잘 되기 만을...
그런데 오후가 되어도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되어버렸는가... 의심도 해보았지만...
겨우 오후 5시가 다 되어야 나오는 것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인공호흡기를 달고 숨을 쉬고 있었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하루종일 조마조마 기다린 보람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다.
회복실로 옮겨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조금 지나면서 8시 경에 숨이 넘어갔다고 이야기 한다.
이때의 실망감이란 뭐라 할 것인가? 2-3시간의 삶은 가짜의 삶이란 말인가?
부모를 실망시켜주지 않기 위해 수술실에 이미 죽은 몸을 인공호흡기를 통해 임시 살게 만든 것이 아닐까?
등등 별별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손으로 아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딸 2을 낳아 딸 3이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나 같은 사람도 바로 죽음학 효시, 700회 강연의 정신과 의사 퀴블로 로스의 실제적 조언이 많은 위안이 되었고, 용기를 갖게 되었다.
진즉 일찌감치 이런 의미있는 책을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앞으로는 주변에 어려움에 처함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리라 다짐해본다.
다음의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죽어 가는 아이의 내면 상태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하여 함께 성장하며 귀 기울여야 할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란다.
인간의 직관과 정신, 즉 내면세계는 깨달음과 평안을 주고 사랑과 이해에서 멀어지지 않으며, 삶의 폭풍우를 헤쳐나갈 방향을 제시한다고 확신한다.
또한 나머지 자녀에게 죽음의 고통을 차단시키려 하거나 숨기려고 하기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죽어 가는 형제자매를 돌보는 일에 동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이다.
깊은 계곡에 폭풍우가 몰라치지 못하게 했다면, 그 아름다운 절경은 볼 수 없으리.”(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