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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님의 서재

 학창시절 국사시간에는 초,중,고등학교 예외없이 선생님들은 임진왜란이 우리 즉 조선이 승리한 전쟁임을 강조하였다.그런데 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을 갔고, 조선 땅에서 일본군을 몰아 낸 것뿐인데 승리한 전쟁이라고 할까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또한 초등학교 수학여행은 필수적으로 현충사를 가야만 했고,고등학교 때는 충무공의 애국정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충무교육원이라는 곳에 며칠 동안 들어가 국민의 덕목이라는 것을 배운 기억이 난다.거기에다 칠백의총까지 행군하여 사당에서 분향하는 것이 전학년에 걸쳐서 한번은 꼭 가야할 소풍 코스였다.이렇듯 임진왜란의 기억이 우리 일상에서 국민이 가져야하는 애국심을 강화하는 교육 교재로 쓰인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는 이전의 의문과 더불어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그 당시 조선과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같길내 조선과 현재의 우리를 동일시 하는가?'또한`그 당시 가부장적인 봉건 질서 속에 논개에게 조선 장수와 일본 장수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이런 의문은 가시지 않은 채로 바쁜 일상 속에서 곧 잊혀지고 있었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나서 전에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하였다.내가 바라던 책이 나온 것에 대한 기쁨으로 지루한 줄 몰랐다.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임진왜란이 후대에 어떻게 기억되고 해석되는 지에 대한 것이다.  

  논개로 대표되는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은 기생이라는 소설 소재를 통하여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활용해 남성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국민의 의무를 강요하며 그에 따른 희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사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박종화를 역사 소설의 대가로 치켜세우고 그의 소설을 추천해서 그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선생님뿐만 아니라 그 당시 언론매체들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고 그 영향으로 나는 그를 매우 훌륭한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나중에 그 허구성을 알게 되었지만 그의 소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인적이 있었다.어떻게 보면 기생이라는 하위 계층의 여성을 통해 신분이 다른 여성과 분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 전체를 주체적인 인격체로가 아니라 남성이 주도하는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국가에 대한 여성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이러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여성의 가혹한 희생 뒤에 비로소 여성은 국민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심지어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까지도 미군이나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진정한 애국자라는 말까지 했었다.그 잘난 남자들이 나라를 망하게 해놓고 그 결과는 조선에서도 피억압자인 여성이조선과 일본이라는 국가와 남성에 의해 이중의 억압을 경험해야 했던 가장 큰 희생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논개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중요시하고 오직 논개를 `忠'의 화신으로 만들어 그러한 상상이 확고한 사실로 변하며 만들어진 기억이 획일적으로 주입되고 있다. 

  또한 조선이 국가의 한 국가의 체면때문에 특전을 주겠다는 약속을 통해 피로인 쇄환에 집착하면서도 막상 특전을 부여받은 자는 자력으로 귀환한 경우에 한정되었다.지금까지도 역사의 희생자이면서 국가에 의해 버림받는 일이 반복되는  것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화왕산성의 기억에서는 화왕산성 수비는 적의 입장에서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가 없어 적의 진로를 막거나 타격을 가하는 등의 접전이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 남인들이 노론에 맞설 수 있는 명분을 쌓고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에 의해 <동고록>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는 등 실제와 거리가 먼 설명을 하였다.또한 <동고록>을 기초로 한 실기가 사실기록의 근거가 되어,문중들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결국 화왕산성 수비라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와 다르게 인식되어 그 인식이 역사적 진실로 기억되고 있다.지금도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사실도 그 존재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사실이 어디서 생겨나서 어떻게 전달되었는 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의미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이순신을 기억하는 관점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순신이 살았던 시대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인식해야지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과 나타난 인물에 의해 역사화하려 해서는 안된다.이순신을 우리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도피처로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을 더 깊이 역사적으로 성찰하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재생시켜야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전쟁의 당사국들은 7년 동안의 전쟁의 참상은 뒤로 한채, 오로지 자신들이 승리자이고 그 승리가 빛나는 영광임을 서술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서술은 전쟁의 교훈을 평화의 가치가 소중함을 깨닫고 평화를 추구하는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투쟁 속에서 적에 대한 승리와 정복에서 찾는다.또한 그 배타성으로 인해 획일성을 강요하고 진실과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함을 알아야 한다.어느 누구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역사해석을 할 수 없지만 역사를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켜서는 안되며,국가의 개입에 의한 과도한 역사해석을 경계해야 한다.우리에게 전달된 역사적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억의 발생과 전달과정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배경까지도 역사가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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