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미유키
내가 미미 여사라고 부르면서 대충 이름을 얼버무렸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을 제대로 확실하게 외우게 해 준 작품. <흑백방 >시리즈 중 9번째로 에도시대 미시마야 주머니 가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해서 미시마야 시리즈라고도 한다. 이 작품이 내게 유난히 다가왔던 것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듯한 옛날이야기의 진기함과 기괴함에 마음을 빼앗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걸 넘어서 여성들의 연대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여성의 연대뿐만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줄곧 마음을 울렸다고나 할까. 에도 시대, 미혼모, 이혼당한 여자, 집에서 쫓겨난 여자 등, 그 당시 실정에서는 살아남기가 불가능했던 여성들이 어떻게 힘을 함 쳐 살아가게 되고, 또 고아가 된 아이들을 잘 자라게끔 지켜주는 어른들의 모습이나, 아름다운 미모로 태어나 외모를 팔아 살아갈 수도 있음에도 그걸 거부하고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주체성 있는 여성의 모습 등을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었다. 에도 시대 당시, 무지와 비이성의 세상일 것만 같은 세상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주체성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평생 비주류· 마이너의 감성에 반골 기질이 넉넉한 나로서는 넋을 빼고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작가가 <연대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라면서 " 에도 시대에 관해 공부할 때마다 부당한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절감하곤 합니다. 현실에서는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지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써 내려갔습니다."라고 말했다는데, 그녀의 절절한 바람이 너무 공감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더불어 진짜로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인정이 살아 숨 쉬는 책, 괴담이지만 고개를 끄덕끄덕이게 하던 책, 그녀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이런 작품들을 많이 내 주셨으면 좋겠단 간절한 바람이 생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어놓는 걸 보면 미야베 미유키는 현대 일본판 셰에 라자드가 아닐까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천부적인 이야기꾼. 그녀가 앞으로 쏟아낼 이야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