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허진님의 서재
  • 두려움이란 말 따위
  • 아잠 아흐메드
  • 18,000원 (10%1,000)
  • 2025-11-12
  • : 2,920

두려움이란 말 따위.

두렵지만, 그런 말 따위 할 필요 없다는 뜻일까,

두려움은 말 따위에 불과해고 난 두렵지 않다는 뜻일까.

'평범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을거라 믿고, 조용히 그리고 안전하게 지내던 가장 평범한 가족의 딸 카렌이 마약 갱단에 납치되어 사망한다.

어머니 미리암은 딸 카렌의 구출을 위해 많은 몸값을 지불하고 정부에 도움도 청했지만 그 무엇도 카렌의 목숨을 구해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가장 평범하게 살길 원했던 미리암은 직접 그들의 심판에 나선다. 멕시코 내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집단으로 간주되는 세타스 카르텔에서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죗값 치르지 않은 이들. 모두 죽음으로 벌받으리라.

평범한 소시민으로 남고 싶었던 미리엄과 그녀의 여정을 끈질기게 쫓는 르포르타주. 작가는 아잠 아흐메드이다.

카렌이 실종된 지 정확히 한 달째가 되었던 2014년 2월 23일, 미리암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2층으로 올라가 목욕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머리를 빗었다.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입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거실에서 아잘리아에게 말했다.

"한 달이 지났는데 그놈들이 카렌을 돌려주지 않았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엄마로서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미리암은 카렌이 집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적어도 자신이 바랐던 방식으로는 말이다. 막내딸 카렌은 죽었다. 목소리에는 자기 연민이 없었고, 얼굴에는 눈물도 고통스러운 기색도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내 여생을 걸고 내 딸에게 이런 짓을 한 놈들을 전부 찾아낼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p55

책은 멕시코 범죄 카르텔의 역사와 주인공의 역사를 계속해서 교차시킨다. 그래서 더 생동감있게 느껴진다. 방대한 양의 자료에서는 모든 인물이 개인으로 존재한다. 조용히 존재하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에 금이 가던 시기. 갱단들이 정치와 법의 손을 잡고 서서히 몸집을 불려나갈 때, 미리암은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도 평범한 인생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그러나 하나의 갱단이 아닌 여러 갱단끼리의 싸움이 지속되고, 또 그 규모가 점점 커지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뿐인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안긴다. 폭력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하고, 저녁 외출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 되어 버렸으며,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도 모른척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6장 '저주받은 가족'에서는 미리암-루이스 부부를 필두로 가족이 점점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렌은 부모의 별거와 지역사회 전체가 마비된 시기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카렌은 점점 밖을 향해 나갔고, 가족들에게 사생활을 숨겼다. "파니의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것부터, 바바라와 친구가 된 것, 그리고 어느 순간 범죄 세계에 노출된 것까지.(p138)" 카렌은 범죄의 표적이 되었고,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탈출하기도 한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죽은 딸을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해,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세타스 카르텔을 소탕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미리암을 집요하게 쫓아가는 과정이다.

"배가 고파요." 크리스티아노가 말했다.

미리암은 동정심을 느꼈다. 가슴이 아팠다. 분노보다 더 근본적인 감정이었다. 그녀는 크리스티아노가 있는 조사실로 건너가 비닐로 감싼 닭고기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조사가 길어지면 자신이 먹으려고 가방에 싸 온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이자 1년 전 남편이 납치된 이달리아 드 바에스도 수사본부에 함께 와주었다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수사관 한 명이 화난 목소리로 이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미리암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인간은 두 가지 진실한 감정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 살인자에 대한 증오심, 그리고 겁먹은 소년에 대한 동정심.

p176

복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통쾌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도 불행해짐을 느낀다.

아주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사건의 타임라인이나 글의 짜임새에 흠이 없지만서도 어느 한쪽을 편파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건 자체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미리암의 이야기를 따라가긴 하나 그녀에게 감정적으로 깊게 몰입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자로 가깝게 느껴진다. 건조한 것 같은 문체를 구사하는데 버석버석하진 않고 오히려 희미하게 타오르는 느낌이 있다.

단순히 딸을 위한 복수에서 시작하여 나와 같은 처지의 피해자 가족들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 연대하며 끝내는 가해자의 가족들 역시도 피해자로 품고 보듬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를 보여주는 성장 서사이다. 동시에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던 평범한 사람이 평범함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이기도 하다.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는 과정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 사람을, 한 가족을 이렇게까지 깊게 들여다봐도 되나?

퍼즐 조각 맞추듯이 단서를 조금씩 조금씩 모아 사건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경찰이 출동해 수갑을 채우자 엘 키케가 미리암에게 자비심도 없냐고 물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딸을 죽일 때 네 놈의 자비심은 어디에 있었지?"

p256

절대 두려워하지 마.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 두려움에 휘둘려선 안 된다, 특히 여자는.

p277

사건을 파헤치는 집요한 능력과 두려워하지 않는 심성으로 정부와 해병대, 세타스 카르텔에게마저 주요 인사가 된 그녀는 이제 다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어머니가 지난 3년간 맞서온 세타스, 어머니 때문에 조직원들이 죽거나 수감된 카르텔, 공포를 연결고리로 삼았던 지배구조를 어머니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하여 와해시킨 범죄 조직이 마침내 보복에 나섰(p283)"고 미리암은 총 8발을 맞는다. 그녀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가 카렌을 살해한 가해자들을 찾아다닐 때 묵묵한 조력자가 되었던 아들 루이스 엑토르가 미리암이 남긴 모든 것을 받아 여동생과 어머니를 위한 복수를 마무리지으려 한다. 그러나 불의에 맞서 온몸을 던졌던 미리암은 이제 없다. 그리고 세상은 그녀가 존재하기 이전으로 손쉽게 돌아간다. 이제 세상에는 폭력과 슬픔만이 몸집을 불린 채 숨쉰다. 미리암을 기억할 사람, 누구인가.

이 책은 한 개인이 역사와 무관할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알려준다. 완전히 혼자서 존재하는 개인은 없다. 모든 인생은 시간과 사건 위에 배치되고 뒤섞이며 각각의 모양과 서사를 갖는다. 우리는 훗날의 누군가가 배울 역사서 속의 사건을 실시간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엄의 이야기는 어쩌면 개인의 서사일 수도, 어쩌면 단체의 서사일 수도, 어쩌면 세상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어쩌면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사회 문제에 엮이지 않고자 그러 조용히 살길 바랐던 한 가족 구성원의 납치, 살해, 복수, 연대를 거치며 사회와 역사의 일부로 걸어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

우리가 바라던 것이 확실하게 구현되어 있다. 이곳저곳 마구 누빌 수 있는 친화력과 라포, 사실에 기반한 꼼꼼한 취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와 긴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필력 같은 것.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고, 읽고 난 후에는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며 마음이 약간 차오르는 것. 마구잡이로 책을 찍어내는 시대에 사람을 위해 사람이 오래 공들인 책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2025. 12. 11 허진


카렌이 실종된 지 정확히 한 달째가 되었던 2014년 2월 23일, 미리암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2층으로 올라가 목욕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정말 오랜만에 머리를 빗었다.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입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거실에서 아잘리아에게 말했다.

"한 달이 지났는데 그놈들이 카렌을 돌려주지 않았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엄마로서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미리암은 카렌이 집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적어도 자신이 바랐던 방식으로는 말이다. 막내딸 카렌은 죽었다. 목소리에는 자기 연민이 없었고, 얼굴에는 눈물도 고통스러운 기색도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내 여생을 걸고 내 딸에게 이런 짓을 한 놈들을 전부 찾아낼 거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P55
"배가 고파요." 크리스티아노가 말했다.

미리암은 동정심을 느꼈다. 가슴이 아팠다. 분노보다 더 근본적인 감정이었다. 그녀는 크리스티아노가 있는 조사실로 건너가 비닐로 감싼 닭고기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조사가 길어지면 자신이 먹으려고 가방에 싸 온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이자 1년 전 남편이 납치된 이달리아 드 바에스도 수사본부에 함께 와주었다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수사관 한 명이 화난 목소리로 이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미리암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인간은 두 가지 진실한 감정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 살인자에 대한 증오심, 그리고 겁먹은 소년에 대한 동정심. - P176
경찰이 출동해 수갑을 채우자 엘 키케가 미리암에게 자비심도 없냐고 물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딸을 죽일 때 네 놈의 자비심은 어디에 있었지?"- P256
절대 두려워하지 마.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 두려움에 휘둘려선 안 된다, 특히 여자는.- P277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