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나 역사 소설을 보면 왕이 경연에 나간다는 말을 듣게 된다.
경연이란 왕이 스승들과 공부를 하는 자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경연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한 책은 읽어 보지 못했다.
이 책, 저 책에서 조금씩 다룬 내용을 접해 보기는 했지만 < 경연, 왕의 공부>처럼 한 권의 책에 경연에 관한 많은 내용이 담긴 책은 처음 읽게 된 것이다.
" 경연이란 남의 지헤를 빌리는 자리, 곧 지존의 왕이 신하들을 스승으로 삼아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배우는 자리이다. 남의 머리를 빌리는 것, 남의 말을 듣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교양을 쌓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 (p24)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존립을 책임진 유일한 대표인 왕이 그에 걸맞은 덕성과 자질,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유가의 경전과 중국, 우리나라 역대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경연인 것이다.
왕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에 걸쳐서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 소대(召對), 야대(夜對) 등의 경연을 통해서 공부를 하고, 경연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였으니, 이것이 조선시대의 나라를 경영하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제 1장 : 국왕의 일과
하루 5번 이루어지는 경연과 경연에서 국왕들이 공부하는 방식, 정책토론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 2장: 경연의 유래, 역사, 경연에 쓰인 교재, 진강(進講)방법, 경연관의 구성과 선발, 경연의 목표 - 경연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제 3장 : 경연에 참여했던 경영관들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실제 경연에서의 강의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를 알아본다.
경연의 중요성이란 나라의 권력이 왕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는 상황에서 권력의 남용과 독단을 막을 수 있고, 왕에게 놓여진 정치 현안들도 경연을 통해서 스승들과 함께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이 모두 경연을 중요하게 여기고, 경연에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아니다.
세종과 성종처럼 조선 문치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왕들은 재위기간의 각종 경연에 관련된 기록이나 기사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조선시대의 군주의 모범을 보여준 왕들이고, 경연의 모범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조와 연산군은 제왕 학교의 문제아라 칭할 수 있다.
세조는 집현전을 혁파하고 경연을 폐지하였으며, 연산군은 재위 초반부에는 경연을 중시하였으나, 후기에 가서는 홍문관을 혁파하고 경연을 폐지하였기에, 신하들과의 사이에 경연에 참석 여부를 두고 옥신각신한 내용의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선조는 강론에는 열심히 참여했으나 마음을 열고 강론을 들은 것이 아니라 건성으로 듣고 정책에는 검토를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은언군의 손자인 철종은 왕손이지만 역적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강화도에 숨어 살면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즉위후에 경연에 참석하게 되는 경연의 편입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철종은 경연을 통해서 심성을 수양하고, 덕성을 갖추고, 학문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도 철종때의 경연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 역사 속에서 가장 폭넓은 지식과 박학한 왕은 정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학군주 중심의 개혁정치를 이론적으로 지탱한 규장각을 통해서 정조 자신이 스승이 되어 규장각 각신과 초계문신에게 가르침을 베풀기도 했다.
이처럼 경연은 국가의 안녕과 백성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왕들이 자질을 갖추고 학문을 배울 수 있는 장이고, 왕의 평생교육기관이었기에, 왕들이 경연에 적극 참여하고, 열심히 강론에 임한 왕들을 보면 조선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인 것이다.
경연과 왕의 치적은 비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연, 왕의 공부> 제 3장은 경연의 실제 기록이 담겨져 있는 장이다.
그것은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과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의 내용이다.
기대승은 경연에 참석하여 강학한 내용을 모은 <논사록>을 기록한 사람인데, 경연 기록자료 중에는 대표적인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이의 <경연일기>는 원래 <석담일기>라는 제목의 필사본으로 이이의 직계 제자와 율곡 학파에서 거의 비전되다시피 전해지다가 김집의 제자 송준길에 의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것이 영조 25년에 <율곡 전서>가 간행될 때 합본으로 수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명종 20년에서 선조 14년까지 이이가 경연에 참석하여 보고 듣고 겪은 내용과 건의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경연의 기록만으로도 그 시대의 사회상황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경연의 기록들을 통해서 왕들이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경연에 참석했던 스승들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문답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질문과 답변을 읽으면서 왕들의 심성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책의 첫부분에는 경연과 관련이 있는 사진들이 실려 있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재미없는 내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 쉬우나, 책을 펼치는 순간 이제까지 많이 접하지 못했던 내용들이기에 한층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나 일반인들 모두 한 번쯤은 조선시대의 왕들의 경연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경연이란 왕과 현자의 이상적인 만남의 장이기도 하고, 그것은 왕이 얼마나 책임있는 정치를 할 수 있는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