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수시로 떠나던 때가 있었다.
일상이 지겨워서, 자꾸만 피하고 싶어서,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합법적인 방법이 여행이라서
자꾸만 여행을 '이용'했다.
그런 여행은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열심히 이것저것 보고 듣고 먹고 마시며 즐기려 했지만
결국 나는 일상에 돌아와야 했으니까.
벗어나려던 일상에 돌아왔을 때에는 허무함밖에 남지 않았다.
내 여행은 왜 실패했을까.
'여행은 적어도 일상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쉬지 않고 돌아다녔고,
적어도 남들이 한 번쯤 들리는 핫플레이스는
무조건 방문하기 위해 노력하는 안전빵 여행이었고,
이는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겠다고 떠난 여행에서 또 다른 정해진 선택을 했던 결과이지 않았을까.
그런 여행은 내게 '나도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는 뿌듯함과
SNS에 올릴 그럴듯한 사진 몇 장 외에는 특별한 감흥을 남기지 않았다.
지금은 비행기에 잘 오르지 않는다.
반복적인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사실 비행기에 타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나 떠날 수 있다.
정해진 루틴에서 벗어나 삶을 낯설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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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 저자인 이준명 여행작가는
남들이 자주 다니는 동남아 휴향지 같은 여행장소보다는 주로 오지를 많이 다녔다.
짐가방을 도둑맞고, 50여 시간 동안 엉덩이가 박일 때까지 버스를 타고,
빈대에게 밤새 공격을 당하고, 짐꾼과 운전사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을
구구절절 끝도 없이 나열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기꺼이 여행하라고 '여행예찬'을 한다.
(독박육아로 힘들다고 엄청 징징거리다가
'그래도 좋아. 너도 얼른 결혼해서 아기 낳아' 하는 언니 느낌ㅋㅋ)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여행을 설명하는 문장들은
삶을 설명하는 문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분명 여행을 삶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여행으로 대표되는 삶의 흔들림을 거부하지 말고
함께 흔들려보라고, 기꺼이 망가지는 용기를 가지라고, 위험을 즐겨보라는 권한다.
소소한 좌절들이 모여 우리를 좀더 나은 삶으로 안내하는 법이니까.
이 책의 제목이 '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인 이유는
'용기만 있다면 삶도 여행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유목민과 같은 여행을 꿈꾸는 것 같았다.
자꾸만 떠나려고 시도하지만 억지로 떠나지는 않는다.
순리에 따라 있던 자리를 벗어나지만 또 다른 인연에 따라 또 그 자리로 돌아오는,
그저 운이 맞으면 가고, 운이 맞지 않으면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런 것이 여행하는 삶, 삶 같은 여행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용기내어 떠나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