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율이 9.9퍼센트를 육박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한 번도 일을 해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나마 직업을 구한 이들도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너도 나도 대학 1학년 때부터 대학전공이 아닌 공무원 시험 과목을 준비하고,
각종 공모전과 봉사활동으로 4년을 보낸다.
제때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니, 졸업을 유예해서라도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청년들은 직장을 찾기 위해 아우성인데, 기성세대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고 난리다.
이 간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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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너무 눈이 높아’, ‘모험정신이 없어’,
‘중소기업에서 우선 실력을 우선 쌓아라.’
하지만 청년세대들은 안다.
한 번 잘못된 사다리를 선택하면 다시는 옮겨 탈 수 없다는 것을.
이 나라는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으니까.
장강명 작가의 <표백>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도전과 모험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기성세대들이 벌써 했을 것임을 그들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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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문학계의 공모전과 기업의 공채 시스템에 대해 살펴본다.
각 시스템을 비교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경직성을 밝힌다.
책에 따르면 두 시스템 모두 ‘뛰어난 소수’를 선정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하기보다는
진흙을 걸러내는 역할로서 작용한다는 내용,
결국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보다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이를 고를 수밖에 없는 시스템 등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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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찬호 선생의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가 떠오른다.
모두가 시험에 매달리는 시스템,
한 번 낙오되면 다시 오를 수 없는 사다리,
제도권 안에 들어가기 위해 점점 더 보수화되는 이들.
고작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자리를 놓고 수많은 사람이 애를 쓰는 아귀다툼.
그리고 이러한 기회마저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수많은 약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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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다양성’이다.
장강명 작가는 이 다양성을 담보하는 방안으로
‘독자들의 문예 운동’을 제안한다.
기존에 상류 위주로 설계된 간판을 허물고,
공모전 외에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돕는 공동체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기존의 시스템’에 더해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된다면
지금처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수십, 수백만 명이 달리는 상황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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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모험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모험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든 건 기성세대이므로.
자신들도 좋은 세상을 못 만들었으면서
젊은이들에게 윽박지르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