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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배님의 서재
  • 내일의 건축
  • 이토 도요
  • 14,400원 (10%800)
  • 2014-06-05
  • : 141

내가 처음 도요 이토의 이름을 접한 것은 '현대건축의 흐름'이라는 학교수업에서였다. 수업에선 센다이 미디어테크와 윈드타워 정도를 다루었는데, 짧게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사실 도요 이토라는 건축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안도 다다오와 비교해서 조금 더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가라는 느낌정도? 그래서 처음에 책의 제목인 '내일의 건축'을 보았을 때 도요 이토의 작업세계나 앞으로의 건축물들에 대해 다룬 내용일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내일'은 내가 예상했던 뻔한 의미의 '내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책을 어느정도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시장님과 회견하는 과정에서 시장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 노숙자들이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집을 잃을 사람들이 넘쳐나는 지금, 원조 노숙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노숙자들을 보살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사람과 사람이 잠깐 동안이지만 수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 관계를 이루게 된 것이지요. 또 기름이 떨어지고, 물마저 구할 수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졌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전철이 1분만 늦어도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운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통 기술, 건설 기술, 통신 기술 등 전 세계에 일본의 기술이 자랑하는 높은 정밀도는 분명 훌륭한 것이지만 그 정밀도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존재할까요. 이번 지진은 그런 궤변의 허무함을 부각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앙에 가까운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간 이후, 그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받아들인다. 도시 속의 큐브에 갇혀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가 차단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초정밀기계들에 의해 오히려 사람들이 쫓겨살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기회. 마치 40일간의 대홍수 이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기회를 얻은 노아처럼 말이다. 그리고 건축을 통해 이를 돕기 위해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위 사진처럼 쓰나미에 쓰러진 나무를 이용해 집을 만들기도 하고, 주거공간 중앙에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사람들의 교류를 유도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책을 읽던 중간에 모두의 집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얻고싶어서 구글 검색창에 'everyone's house' 'house of everyone'등등으로 찾아보았는데, 관련된 이미지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찾아보았더니 영문명은 'home for all'이었다. 건축의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를 강조했던 이토도요에겐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House 라는 단어가 아닌 Home을 선택했다는 점이 내게는 참 인상깊었다. 헌 집이 쓰러졌으니 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삶의 공동체 의식까지도 건축을 통해 이뤄내려고 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본 건축관 전체를 이 '모두의 집' 프로젝트로 꾸며, 황금사자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기능은 인간의 다채롭고 복합적인 행동을 단순하게 구분해 추상화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기능에 하나의 공간을 대응시키고 만다. "
책에서 그는 계속해서 근대와 기능, 그리고 이를 중시하는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기능' 그리고 이를 위시한 모더니즘 건축은 어느 순간 사람의 생활반경을 통제하고 구속한다. 또 어떤 순간에는 건축물이 단순히 건축가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디자인 되기도 한다. 쓰나미 피해주민들을 위한 가설주택은 대량생산된 큐브형태로 그저 먹고 잠자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공간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대량생산될 수 있는가, 여부가 가설주택의 가치판단 기준이다. 여기서 그는 '사람을 위한 건축'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교류하며 서로를 치유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소프트웨어까지 고려하는 건축을 시도한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한편으로는 뻔해보일 수 있는 이 명제는 어느새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이 되었다. 



이 책에서 도요 이토는 위 사진의 센다이 미디어 테크처럼 기술적으로 뛰어나거나 미래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그의 모습이, 그 어떤 모습보다도 멋져보였다. 나무로 지은 수수한 건축물들을 전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 대표작을 통해서만 만났던 '도요 이토'가 아니라, 진지한 고민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는 건축가 '도요 이토'를,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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