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과에 재학중이니만큼, 사진은 내게 그리 낯선 분야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학년 때 이후로 사진수업을 다시 들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왠만한 사람들도 다 가지고 있는 DSLR도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막연하게 사진은 있는 모습을 그대로 찍으면 되니까 더 쉽고, 작가 개개인이 차별화되기도 어려운 분야라고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구본창 작가는 이런 나의 생각을 많이 바꾸어주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가 나를 옆에 앉혀놓고 자신의 작업세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느낌이 든다. '이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어서 이렇게 진행되고 이렇게 마무리된거야', '이 작업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라고 나긋나긋하게 말해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달까. 작가는 셀프 포트레이트부터 백자사진까지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지만, 각각의 작업에는 모두 나름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작가의 진한 애정이 담겨져있다.
p.152 “대상의 표면에 사로잡혀 그것만 찍으려 하면 표면적인 아름다움 이상은 표현할 수가 없다. … 사진가라면 찍으려는 대상물에서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다. … 바다를 찍으려 한다면 그 바다는 나에게 특별한 것이고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는 작업을 설명하면서 '사실 이렇게 찍은 건 내가 처음이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의 작품 중 바다나, 탈, 백자를 찍은 것은 사실 이전에도 흔했던 소재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동안 사진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고 '뭔가 예전에 본거랑 비슷한 것 같다', '사진은 다 그게 그거같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는데, 그런 내 관점이 결국 작가가 말하는 '대상에 표면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나싶다. 소재의 신선함만으로 작품을 판단하는게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유독 사진에서 '다름'에 집착했는지, 스스로가 왠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의 '다름'은 작가가 담아낸 의미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인데,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이전에 보았던 사진작업들이 왠지 다르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p.185 “내가 찍으려고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란 있는 듯 없는 듯 너무도 조용히 존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은 것들일 때가 많다. … 주변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애정이 필요하다. 따뜻한 눈이 있어야 보이고 읽힌다.”
또 특히나 나는 이처럼 작은 사물의 관심을 쏟고 지나쳐가는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의 세심함이 인상 깊었다. 나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촉, 즉 '안테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속에서 감동과 의미를 찾는 것이 예술가의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구본창 작가의 세심함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할 정도여서, 바쁘게 사느라 기계적인 생활패턴만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새삼 멀리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작가의 세심한 감성은 그의 '콜렉팅'에서 두드러진다. 내가 워낙 방 안에 장식품 하나 안 놓고 사는 건조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누군가 버린 것들,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 또는 아주 오래된 물건들을 차곡차곡 모아 그 자체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놓은 그의 모습이 참 멋져보였다.

p.144 “…자신이 추구하거나 보여 주려는 작품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두 세계를 구분하기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타파해 가면서 자기 것을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낫다.”
이 책은 창작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작가의 작업을 소개하는 챕터에서는 작가가 '독자'로서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면, 이런 챕터들에서는 '선배'로서 나에게 조언해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많은 예술인들이 '상업적인 작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이와 타협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빈번하다. 인디밴드나 랩퍼가 tv에만 나와도 돈과 타협했다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작업이든 결국 모두 자신의 작업이기에 항상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는 작가의 말이 크게 와닿았다.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태생 자체가 상업적이면서도, 동시에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성 발휘가 중요한, 꽤나 모순적인 분야이다. 떄문에 나 또한 아직 학부생이지만 항상 내가 하고싶은 작업과 보편적이고 정석적인 작업형식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작가의 말이 내게 작업자로서의 적절한 태도를 지시해주는 듯 하여 기억에 오래 남았다.
또한 채널전환과 에디팅, 그리고 머릿속의 폴더 얘기를 하면서 이 사람은 단순히 감성적으로 예민하고 세심해서 작가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프로로서 제대로 일을 하는 작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습관적으로 자료를 모아 잘 정리해두고, 일을 진행할 때에는 큰 계획 아래에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는 것. 가장 기본적이고 쉬워보이는 일이지만 실제로 작업을 할 때에는 항상 무시되기 십상인 프로세스이다. (나 또한 그렇다.ㅠㅠ) 60에 가까운 프로작가의 투철한 작업정신과 계획성을 보면서 겨우 학생인 내가 이토록 나태하게 살고 있다는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덮으며, 그 동안 망설이던 dslr 카메라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간직하는 일의 매력을 이제서야 조금 느꼈기 때문이다. 사진이야말로 일상에서 수시로 예술가의 '안테나'를 세우고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감수성과 취향을 키워나가는데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의 즐거움, 그리고 작업자로서의 태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 이 책이 참 고마웠다. 시간이 된다면 구본창 작가의 전시회에도 꼭 한번 가서 작품들을 실제로 보고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