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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 지구의 속삭임
  • 칼 세이건 외
  • 27,000원 (10%1,500)
  • 2016-09-02
  • : 1,621

지구의 속삭임

 

안 그래도 읽기가 느린데, 한 번에 한 권 진득하게 읽지 않고 무드에 따라 여러권 돌려 읽는 나쁜 독서 습관을 가진 내가. 최근 앉은 자리에서 바로 먹어치운 책이 두 권 있다. <별의 계승자>와 <지구의 속삭임>

이 두 권은 출간 전부터 디데이를 꼽아가며 기다리던 책이라 당연히 그랬을지 모르지만, 읽기 시작한 뒤로도 어딜가든 스마트폰 처럼(?) 계속 들고다니면서 눈에서 떼지 않았다. 생선을 구우면서도, 면을 삶으면서도 단 몇 줄만 읽을 수 있는 상황이라도 계속 읽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다음 뒷 단락이, 뒷 페이지가 (젠장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에.

특히 <지구의 속삭임>은 받아놓고 그 판형과 페이지에 뜨악 했는데 막상 펼치고 나니 그냥 뚫린 고속도로였다. 과학서적이지만 과알못이 봐도 골치아플 내용없고 번역도 최고다(김명남 번역가)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디자인만큼이나 컨텐츠가 사랑스럽다. 보이저 프로젝트를 향해 넘쳐서 어쩔줄 모르는 애정을 가득 안고 집필한 흔적이 페이지 구석구석에 묻어있다. 마치 내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같은 뜨거운 애정의 말들 같은.

1977년 NASA에서는 우주의 미지의 수신자에게로 지구라는 행성의 소개와 함께 (다정한) 인사를 보내기로 한다. 보이저(voyager)호라는 이름의 무인 탐사선에 골든레코드라는 LP앨범과 재생장치를 함께 실어 보내는데 이 디스크에는 전 지구를 대표하는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가게 된다. <지구의 속삭임>은 칼 세이건을 중심으로 이 정보들을 모으는 과정과 그 정보들에 관한 해설이 주된 내용이다.

사실 보이저호의 미션은 태양계 너머의 성간 탐사가 주요 목표이기 때문에, 골든 레코드의 낭만에 주어진 시간과 자원은 많지 않았다. 시간은 6주 남짓, 예산은 모르겠지만 거의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레코드 제작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무료봉사라는 단어를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_-;;) 어쩌면 NASA입장에서는 골든레코드 같은 건 완성 안 되어도 그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주로 보내는 그 메시지에 회의적인 인사들도 많았다. 실제로 외계 생명체가 레코드를 받을 거라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라고 한 사람도, 있다해도 우리의 정보를 노출하는 건 안보의 위험이라고 한 사람도, 의견들은 다양했다.

어쨌거나 골든 레코드의 담당자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골든 레코드의 주요 정보는 지구를 대표하는 이미지들, 음악들, 소리들, 그리고 각 국의 언어로 된 짧은 인사들 (안녕하세도 정도의)인데, 주축이 된 미국이 자국(또는 서양) 중심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국가와 인종, 자연의 정보들을 담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전쟁, 기아 등의 비극은 제외했다. 물론 어두운 면도 지구의 얼굴이지만, 혹여라도 미지의 수신자에게 그것이 위협으로 읽힐 여지도 염두하고, 친절한 제스처의 인사가 될 수 있는 정보만 수록했다.  

그 정보들을 담는데 많은 걸림돌이 된 건 (느릿한 정부기관의 협조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저작권이었던 것 같다. 이미지의 경우 컨셉에 맞게 재촬영된 분량도 있지만, 많은 이미지와 음악들이 이미 출판, 시판된 이미지와 음악이었기 때문에 일일이 저작권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골든레코드에 들어가지 못한 정보들도 다수 있다.

그 중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비틀즈의 Here comes the sun 이다 ㅎㅎ 골든 레코드 담당자들도, 비틀즈 멤버 4명도 모두 찬성했지만 곡 자체의 저작권이 그들에게 있지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래도 척 베리의 Johnny B Goode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팝은 그렇게 1곡, 다른 곡목은 바흐, 베토벤 등 고전 음악들과 세계 각 부족의 민속 음악 등이 고루 섞여있는데, 이 곡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보이저호에 실리게 된 이미지와 소리, 음악, 그리고 55개국의 인사말에 대한 친절한 해설이 모두 끝나면, 골든레코드와는 별개로 보이저호의 탐사계획에 대한 챕터가 짧게 소개되고,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마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 같은데, 결국 마지막 페이지가 온 게 너무 절망적이어서(...) 역자의 말까지 아까워하며 읽었다.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건가 정말 궁금한건 이 다음인데. 보이저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슨 정보를 보내왔는지 더 알려달라고!! 라는 내면의 아우성에 역자는 충실한 답을 주었다. 이 뒷 얘기가 궁금하면 다른 책 <스페이스 미션>을 참고하면 된다고. 네 ㅠㅠ 그리고 반드시 이어서 봐야 할 책은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정보들을 기반으로 한 <창백한 푸른 점> 
                            
40년 전 외계로 보낸 '지구 영업' ㅎㅎ 속된 말로 어떤 짤과 음원을 보낼 것인가. 고심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보이저 1호는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을 여행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20년까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언젠가 먼 훗날 누군가 미지의 수신자에게 안녕, 하고 인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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