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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 우리들의 반역자
  • 존 르 카레
  • 19,800원 (10%1,100)
  • 2015-12-28
  • : 314

존 르 카레의 신간 번역본을 조금 서둘러서 봤던 이유는 사실 존느님과 함께하는 3분 카레 때문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다 먹은 카레의 여운은 3시간 정도였다면, 다 읽은 <우리들의 반역자>의 여운은 꽤 길어질 것 같다. 이전 작품이었던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특히 그랬던 것 처럼.

 

여전히 창작욕 넘치는 1931년생의 전직 MI6 근무자였던 냉전시대 전문 작가가 써내려가는 스파이소설은 여전히 쉽지 않다. 헐리웃 스파이 영화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은 조금 비약하자면 공무원 업무 일지 보는 기분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본 시리즈>가 '리얼'하다고 하지만, 오...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이야기들에 비하면 그저 헐리웃 액션이다. 르 카레의 소설들은 드라마틱해질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일부러 눌러놓은 듯,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총격도 싸움도 거의 없다. 물론 '현장'은 있으나 작전짜고 회의하고 심문하는 '말'이 르카레 소설의 주된 무기다.

 

<우리들의 반역자>에서 주된 갈등은 냉전시대 이후를 살고 있는 러시아 자금세탁의 일인자 '디마'를 둘러싼 영국 정보부의 게임이다. 젊은 영국인 커플 페리와 게일은 카리브해로 여행을 떠났다가, 의문의 러시아 대부호 디마와 테니스 시합을 시작으로 그와 얽히게 된다. 디마는 아내와 아이들, 정부의 아이, 조카들까지 모두 대동한 대가족. 페리와 게일은 일방적으로 친한척 다가오는 디마가 조금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그의 매력과 아이들과의 친밀함에 그와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하지만 디마의 목표는 따로 있다. 오랫동안 자금 세탁의 일인자로 살아온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금세탁을 돕는 영국의 배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테니 우리 가족의 신변을 책임지라는 딜을 할 참이었다. 영국인인 걸 빼면 '아무것도 아닌' 페리를 매개로 영국의 정보부를 향해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이다.

 

<우리들의 반역자>는 시작의 절반은 페리와 디마 가족의 이야기로, 후반부의 절반은 정보부의 헥터와 루크의 이야기로 나뉘어 전개된다. 독자는 페리와 게일의 시점으로, 거대한 음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수 없는 상태로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 가듯 사건에 아주 천천히 다가간다. 하지만 그 부패와 탐욕과 배신이 무엇인지도 거의 동시에 알게 된다. 문제는 더 이상 이념은 중요하지 않은 세계화와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미 썩어 물들어간 이 판을 주인공들이 어떻게 버텨나갈 것인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오사마 빈라덴이 우리에게 911이라는 선물을 주기 전까지 불행하게 쉬면서 보내던 시기를 언급하고 싶군. 우린 자금 세탁 시장의 한 조각을 두고 우리가 북아일랜드라는 커다란 덩어리를 두고 싸웠던 것과 똑같이 싸웠고 또 뭐든 그럴듯한 수확물이 있다면 우리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싸웠어. 하지만 그건 그 때야 헥터. 그리고 이건 현재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건 좋건 싫건 현재지 - 본문에서"

 

르 카레 소설에서는 복수나 반전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상황을 인물들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르 카레 작가 자신이 현재의 나침반에서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이다.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스파이들은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수확물을 얻어가며. 필요한 배신과 부패를 묵인하며.

 

<우리들의 반역자>에 대한 일간지들의 한마디씩을 보다가 눈에 띄는 문장은 텔레그래프지의 표현이었다. - 기만, 의견교환, 저자 자신의 절망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 (텔레그래프) 저 단어로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절망' 소설의 끝에서 만나는 게 절망이라면 그것 참 씁쓸하지만 불행하게도 '매혹적인 절망'이라 나는 르 카레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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