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목욕탕에서 때를 밀다가 속옷을 갈아입다가
상처에 눈 머무는 순간이 있지
훔쳐봄을 의식하지 않은 맨몸일 때 가령 상처는
가시라기보다는 도드라진 꽃눈,
돋을세김한 순간의 미소래도 무방한데
어디에 박혔건 내력이야 한결같을 테지만
죽지 않았으니 상처도 남은 것 그리 믿으면
더 억울할 일이 없을까
나는 상처를 받았고 또 몇 구러미의 상처를 보냈나
403호로 배달된 사과 상자를 대신 받은 기억 있고
쓰레기 더미 속 헌 옷을 기쁘게 주워 입기도 했네
하지만 얇은 유리 파편으로 만든 그 옷
내게는 꽉 끼었지 그래 나는 아팠었지
천진한 햇살마저 나는 조금 아팠겠지
지나갔으니 묻지 말아야 할까
왜 하필 내게 그걸 보냈는지
난 다 자랐으니까
폴리백처럼 가벼웠졌으니까
(하략)
김은경 시인의 시는 불량하다는 걸 알지만 계속 먹게되는 불량 젤리처럼 자꾸자꾸 읽게 된다.
강렬한 첫 단맛, 그리고 씁쓸한 뒷맛에 중독되어 간다.
얇은 유리 파편으로 만든 그 옷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걸
몇꾸러미의 상처를 주었는지 세어보지 않았다는 걸
상처가 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나는 보지 못했다.
이런 걸 볼 수 있으니 시인이다.
외로워서 살이 찌는 이 밤에
결핍이 밀어가는 오늘을 위해
구름을 시로 바꾸는 법을 배우며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