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소설을 열심히 읽는 편이지만 SF나 판타지 소설을 잘 못 읽는 편이다.
아마 논리적인 납득이 가지 않으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으로서 상상력 부족이라거나 이과적 머리가 안 되어서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왔던 게 사실이고.
그래서 르 귄의 글도 언제나 앞에 조금 읽고 끝을 맺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그녀의 유고집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책을 한달음에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자유로운 사고를 하던 사람도 편협해지거나 고집이 강해지기 쉽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 글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이들어가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녀가 다루는 글의 영역들도 다양하다. 노년의 이야기, 또 문학 산업이나 환타지, 서사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 또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 마지막으로 평생 반려묘와 함께 해 온 애묘인답게 마지막으로 함께 한 파드에 대한 기록까지.
읽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질 뿐 아니라 아직은 신체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늙고 뻣뻣한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 번 느끼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덮고 나서 책장에 꽂혀 있으나 결말까지 가보지 못한 그녀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관례, 신념, 통설, 현실구조에 의문을 품는 방식만으로는 현실에 직접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갈릴레오가 했던 말, 그리고 다윈이 했던 말은 모두 ‘꼭 우리가 알던 방식대로일 필요는 없다.‘가 아니었던가.- P134
...노년이 저절로 스러지지 않도로 노력해 달라고. 나이를 먹으면 먹는 대로 두었으면 한다. 나이 든 친척이나 친구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존재의 부정은 아무짝에도, 누구에게도, 어떤 소용에도 쓸모가 없다.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