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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좋은 방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좋아한다. 서스펜스가 있거나 커다란 갈등이 해결되는 이야기들도 좋고. 그런데 별 이야기가 없는 듯한데 지속되는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바로 [스토너] 때였던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나 제임스 조이스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런 감동이 있었고, 영화에서 그야말로 일상을 다룬 영화들을 처음 만났을 때 바로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좋았던 점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그 일상에 대한 책이나 영화들이 너무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 같다. 너무 자기복제적인 스타일들 때문에도 좀 싫증이 났던 게 사실이고. 사실 일상을 다룬 글들의 힘이란 정말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상 안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나 딱 잡아내지 못했던 어느 순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들조차도 너무 많아지면서 그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나열하며 말줄임표가 범람하는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대충 써대는 글들이 대부분을 이루게 되면서 믿고 거르게 되었달까.

 

그 와중에 만나게 된 [스토너]. 정말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삶을 어찌나 쉬지 않고 궁금해하며 따라가게 되던지. 나처럼 일희일비하고 감정의 널을 뛰는 인간에게 일생을 담담하게 살아가는 스토너의 모습에 움직이게 된 것일까? 















그리고, 어제 읽은 따끈따끈한 [밤에 우리 영혼은].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책을 먼저 읽어 다행이다 싶었다.

 

오랜 기간 자신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바른 엄마, 바른 아내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에디가 남편이 죽고, 아들이 독립한 뒤, 우울한 밤을 견디기 위해 자신처럼 상처하고 이제는 홀로 남은 루이스에게 접근하는 시작은 사실, 극적인 방향으로 가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갈 수도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무엇보다 대화도 교류도 체온의 나눔도 없는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상황이 싫었던 것뿐. 그리고, 새롭게 친구를 사귀는 과정과 똑같이 서로를 만나게 되기 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이 드라이브나 산책을 하면서 우정을 키워간다. 그러나, 이 상황을 응원하는 이보다는 고깝게 보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더 많고... 결국, 더는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에디가 굴복하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이 둘이 담담하게 나누는 이야기들과 더불어 에디의 손자와 셋이 함께 나누는 삶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아이들이란 무서울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는 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 편견없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수의 존재이기도 하다. 함께 산에 간 에피소드나 개를 키우는 부분들은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이 이 셋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고 삶에 체온을 더해주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왜 우리는 남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할까? 인생을 결국 혼자 헤쳐가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하고 또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를 힐난하고 또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어떤 악을 행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남의 행복을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있을까? 없다라고 이론적으로 말하긴 쉽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이런 일을 남에게 행한다. 나 자신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우리는 노인들에겐 어떤 감정이나 기쁨 같은 것이 사라졌을 거란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게 사실이다. 노인들이 친구를 원하거나 자극을 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노욕'이라고 치부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이제 나 자신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나는 혼자만의 생활에만 100% 만족하고 살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아니다'일 듯 하다.

 

물론 결론은 완전하게 해피엔딩은 아닐 지 모르겠지만 [밤에 우리 영혼은]은 담담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두 명의 나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담담하게 진행되는 둘의 대화 안에서 아주 깜깜한 밤하늘에서 여기저기 반짝이는 별들을 발견하고 바라보는 듯한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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