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언젠가는! 우리도 다른 모든 이의 소망처럼 이 시기가 지나가면, 또한 우리 아이들이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었을 때, 따끈따끈한 원서 한 권 품고 여행을 떠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너도 네가 번역한 책 제목처럼 ‘도시를 걷는 여자들’의 한 명이 되어 파리 골목을 쏘다니게 되길. 아니면 안개가 자욱한 런던 거리를 걷다가 코난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에 나온 장소들을 방문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노력했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기대 안 했는데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오늘은 암담해 보였는데 다음 날이 되면 수월해지기도 하더라. 오늘 울었다고 해서 내일도 울라는 법은 없더라고.
우리 번역가의 하루는 대체로 아무 교류도, 사건도 없고 마치 정지 화면처럼 고정되어 있지만 마음속에선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지. 주인공이나 저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미워지기도 하고, 일 때문에 기분이 하늘을 날았다가 급격히 바닥을 치기도 하고, 난제를 만나고 고뇌를 하지. 아무리 홀로 고요히 일을 한다 해도 평정심은 쉽게 찾아오거나 유지되지 않더라. 그래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서 나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도 번역을 잘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어떤 아픔이나 좌절도 시간이 상당 부분 치유해준다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It’s a good life.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일상 이야기에 덧붙여진 이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어. ‘나는 내 삶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놀라기도 했고. 쉬운 문장이지만 쉽사리 번역되지 않는 낯선 정서라는 생각도 들었지.
"It’s a good life"라는 말도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 한국인들은(그중에서도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심하게 그러는 편인데) 대체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습관을 예의로 장착하고, 아무리 행복하고 잘 나가더라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겸손을 떨거나 엄살을 부리니까.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과시하다가 동티가 난다거나 다른 사람의 질시를 사서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경고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듣기도 했고. 과연 나도 제레미처럼 내 삶을 자신 있게 긍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