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신분석은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를 잘 중재하고 조절해서 건강한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부모가 자신의 자아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적절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실망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자녀에게 부모는 벗어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들에게는 관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이 많다. 일명 ‘내로남불’이다. 자신의 경우와 다른 사람의 경우에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 다르다 보니 이런 말까지 생겨났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중 잣대의 심리는 가족 내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연이지만,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타인을 대하듯 존중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만 혜택이 가고,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면, 온전한 가족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부모가 화가 났을 경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도 화가 나서 자녀들에게 버럭 화만 내고 끝낼 수도 있다. 부모 자신도 갈등을 다루는 데 미숙한 경우다. 갈등을 못 다루는 이유는 자신도 그렇게 양육받았기 때문이다. 부모도 차별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났기에 한쪽 편만 든다. 형이나 누나 또는 동생에게만 감정 이입해 자신이 직접 싸움에 참견하기도 한다. 이 외에 여러 이유가 있으나 부모 먼저 원인을 찾아 거기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독일의 교육 전문가인 하이데마리 브로셰Heidemarie Brosche는 자신의 저서 《비교하지 않는 습관》에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한다면 아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이자 교사이며 세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아이의 약점 속에서 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자아를 중심으로 본능과 쾌락에 충실한 이드와 도덕과 윤리와 양심의 원천인 초자아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정신세계의 기본 틀이라고 본다. 어느 한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과잉으로 기능하면 정신의 균형이 깨지면서 부작용으로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는 이론이다.
아이를 동기간 또는 남과 비교해서 약점을 야단치고 고치려 하기보다 내 아이만이 가진 개성과 장점을 찾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는 부모의 지지 속에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한다.
좋은 부모는 아이를 비교하지 않고, 아이의 개별적 요구에 즉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모가 적절하게 반응하면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자신이 보호받으며 대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형성한다.
만약 부모가 자녀 간 갈등을 중재하기 어렵다면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너무 지쳐서 자녀의 싸움에 개입할 힘이 없을 수 있다. 싸움을 지켜보면서 인내하고 적절히 개입할 수 없기에 빨리 다툼을 끝내려고 섣불리 결론을 내린다.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은 심리는 부부 사이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받을 존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과 헌신에 소홀할 때 사랑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내가 사랑받을 때는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할 때뿐이다. 내가 싫고 힘들고 매사 손해를 봄에도 계속해서 배우자에게 맞추고 헌신을 다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기에 부모 문제가 끼어들면 더욱 그렇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자식들이 부모 마음을 몰라주고 자기들 멋대로 살면서 부모를 외면하거나 무시할 때 부모는 양가감정을 느끼며 서글퍼진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구획된 성역, 다시 말해 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다. 모든 존재는 언어에 의해 존재한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는 누구도 인식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존재가 머무는 곳이며,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다.
또 영국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이렇게 말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생각의 한계다.
결혼하고 나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마땅히 경제적, 정서적으로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당당한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두 번째 어머니를 찾고, 아내는 남편에게서 첫아이의 모습을 발견한다"라는 말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공감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부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고 비극이 잉태된다.
양가감정은 ‘애증’으로도 설명된다. 부모와 자식은 애증관계이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언제라도 상처를 주고받고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관계이다.
말은 참 어렵다. 상대방이 내가 뱉은 말의 단어와 문장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뜻과 폭넓은 의미를 넉넉히 헤아려 주면 좋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까지 내 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말 한마디도 편하게 뱉기란 쉽지 않다.
모든 원초적 배움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흘러간다. 부모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하다. 부모가 몰상식하고 비양심적이며 반도덕에 기울어진 삶을 살았는데, 자녀가 자신과 정반대로 살아가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이다.
결혼하고 누구나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좋은 부모, 존경받는 부모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내가 ‘바람 풍’ 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따라서 ‘바람 풍’ 하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부모가 자신과 자녀를 객관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애착관계가 형성됨에도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나 정서적으로 분리된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기를 어려워한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절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녀가 엄마의 품속에서 안전한 것, 편안한 것, 풍요로운 것만 경험한다면 가족 외부에 있는 사회나 현실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엄마 품속에서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은 채 불안한 상태로 성장할 것이다. 경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경계 밖의 것을 경험해 봐야 한다. 처음 경험하는 거리 두기는 때로 위험하거나 무섭거나 사랑의 결핍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경계가 생긴다면 다음에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혈육血肉 이라고 한다. 피와 살을 나눈 사이라는 뜻이다. 유전에 의해 세상에서 둘도 없이 나를 닮은 존재로 태어난 내 자식이고, 그런 나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내 존재의 원형이 바로 부모다. 이런 혈육 사이에도 오해가 생기고 감정이 상하고 상처를 주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먼저 보고 지적하지 말고, 잘나고 괜찮은 부분을 먼저 보고 인정하고 존중하면 어떨까? 존중을 앞세우면 부모 자식 관계가 약간 엉켜버렸대도 다시 예전처럼 붕어빵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태도를 갖추게 된다. 배우자 중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양보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배우자도 타인이라는 생각이 답이 될 수 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이유다. 소중한 나의 타인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촌수로도 부부는 무촌無寸 이지만, 부모와 자식은 1촌一寸 이다. 일정한 마디, 즉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이다. 부부는 결혼하면서 운명 공동체가 되지만, 부모와 자식은 일정 기간만 같이 살다가 헤어져야 하는 한시적 공동체다. 그렇기에 서로 양가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잘 공존해야만 아름다운 가족으로 남을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혈연으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다. 결혼 전에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일이 있어도 결혼 후에는 달라진다.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의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된 자식들은 연로한 부모를 보며 한없이 애틋한 마음을 갖는다. 부모 또한 자신의 품을 벗어나 가정을 이룬 장성한 자식을 보며 품 안에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러한 마음을 배우자가 잘 헤아려 상대방 부모에게 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부당하고 불공평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게 대한다면 섭섭하기 이를 데 없고 심할 경우 배신감과 모멸감까지 느끼게 된다.
어떻게든 마음이 상할 수 있는 문제는 부부가 서로 정확하게 규칙을 명문화해서 정하는 편이 현명하다.
자녀가 자신을 닮으면 흐뭇하지만 나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을 닮지 않기를 소망한다. 자녀가 부모를 도와 가업을 잇겠다면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뛴다. 나처럼 살지 말고 다른 길, 더 좋은 길을 찾아가라는 뜻에서다.
많은 부부가 결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렸음에도 여전히 결혼 전 부모님 가정에서 살아온 익숙한 방식대로 생활하려고 한다. 배우자가 자신과 사뭇 다른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면, 더욱 의견이 대립하고 충돌한다. 이런 상태에서 시어머니마저 개입하면 상황이 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말은 내 인격이며, 생각이며, 존재 자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 배우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타인이기도 하다. 내가 거칠고 독한 말을 퍼부으면 그 말은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 돌아온다. 타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 돌아올 반응은 뻔하지 않은가. 내가 곱고 예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그 말 역시 그대로 반사되어 내게 돌아온다.
내 부모가 소중하듯 내 배우자에게도 부모가 소중하다. 내 배우자가 내 부모에게 소홀하면 섭섭하듯, 내가 배우자 부모에게 소홀하면 내 배우자도 섭섭하다. 내 배우자가 내 부모를 잘 공경하면 흐뭇하듯, 내가 배우자 부모를 잘 공경하면 내 배우자도 흐뭇하다. 내가 좋으면 배우자도 좋고, 내가 싫으면 배우자도 싫다.
인생은 기분대로 살 수 없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다 보면 손해 보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의식적으로라도 ‘부모는 부모이고, 나는 나’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모 역시 자식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자식 또한 부모에게서 떠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품격 있는 언어생활을 하려면 문인이나 아나운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노력은 필수다. 좋은 책을 읽거나 신문, 잡지 등에서 멋진 표현을 발견했을 때 적어두었다 써먹으면 좋다. 노력 없이 거저 되는 일은 없다.
부부생활의 절반 이상은 말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말만 조심하고 잘해도 부부생활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생각할 수 없다면 말할 수도 없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기에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다. 내 생각의 범위는 내 언어의 범위와 정비례한다.
내 말의 품격은 곧 내 생각의 품격이며, 나아가 내 인생의 품격이다. 부부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는 부부생활의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뱉고,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거침없이 구사하며, 수준 낮은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 부부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기는 어렵다. 호칭과 말투에서 배우자를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다.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를 부부가 풀지 않고 외면한 채 자식에게서 보상받으려 할 때, 부부 문제는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된다. 이럴 때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