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환자가 수술을 의사에게 위임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사전 동의는 신약 광고에 덧붙이는 해설처럼 모든 위험을 최대한 빠르게 줄줄 읊어주는 법적 행동이 아니라 고통 받는 동포와 굳은 약속을 맺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입니다. 여기 헤쳐 나갈 길이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회복의 길로 인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즈음 나는 좀 더 유능하고 노련한 레지던트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조금은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필사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내가 맡은 환자의 안녕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침묵을 지킨다.(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건 충격 때문이건 보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곧바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대개는 환자 본인보다 배우자).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