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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충좌돌

내가 아픈 지금은 현실이 만드는 게 아니다. 내가 괴로운 오늘도 세상이 만드는 게 아니다. 상황은 통증만 만들 뿐이다. 괴로움은 내가 만들고 있다. 통증을 괴로움으로 확대하지 마라.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든다. 그 흘러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만이다. 그러니 스스로 괴롭히는 이 무지에서 벗어나자.
그러니 꼭 ‘3그’의 진통제를 들고 다니자. ‘응, 아프구나.’ ‘그럴 수 있다.’ ‘뭐 그래라 그래.’ 통증은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통증을 괴로움으로 확대하지 말자.
나는 인생을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가난한 어린 시절을 선택할 것이다. 그때의 가난이 미래의 부를 예언하고 있었다. 가난한 현실은 풍족한 미래를 포함하고 있다. 가난 속에서 풍요의 마음을 만들고, 그 마음을 인식하며 살 때, 그 마음의 인식이 미래의 부를 부른다. 늘 이야기하듯, 인식이 존재를 부르고, 일체유심조는 세상이 굴러가는 가장 본질적 진리다.
가난이 부의 예언자인 이유다. 예언을 하는 것은 쉽다. 로또 예언도 어렵지 않다. 일주일 먼저 존재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래서 예언은 선행을 의미한다. 내 삶의 가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가난은 내게 먼저 와주었다. 그 가난이 미래의 부를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풍족한 지금을 만들고 있다. 내 마음이 풍요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씨앗이 열매가 되기 위해 우리는 씨앗을 뿌려야 하고, 물을 뿌리고, 기다리면 된다. 씨앗이 발아하는지에 집착해서 매일 흙을 파게 될 때,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열매에 대한 집착, 당첨에 대한 집착은 흙을 파게 되지만, 어차피 잘될 거라는 앎은 감사의 말과 풍요의 행위라는 물을 붓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당첨의 열매는 내 삶에 깃들어 있다.
대출은 레버리지가 아니다. 대출은 레버(lever)다. 레버는 막대기에 해당하고, 레버리지는 그 막대기를 이용한 힘, 지렛대의 원리에 해당한다. 지렛대를 이용해 지렛대보다 훨씬 큰 바위를 움직이듯, 대출을 이용해 자신의 자산보다 더 큰 부동산을 소유하는 게 레버리지다. 그것이 지렛대 효과다.
우리는 ‘늘’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항상’ 소유할 수는 있다. 그건 소유에 대한 앎이 생겼을 가능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 대한 소유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머무를 수 있다. 항상 ‘여기’에 머무를 때, 늘 ‘지금’을 소유하게 된다. 나머지는 가짜고, 렌털이고, 기억일 뿐이다.
과거 ‘100미터 14초’를 아쉬워하고, 미래에 ‘달리기를 못 할 자신’을 불안해하지 마라. 그건 시간 여행일 뿐이다. 시간 여행은 불평, 불만, 불안만 야기한다. 과거를 불평하고, 현재에 불만족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하는 시간 낭비다. 시간을 여행 말고 지금에 머물러라. 여기에 현존해라. 그러면 알게 된다. 여기는 진짜고, 지금은 소유고, 현존은 알아차림이다. 그것이 우리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
현실의 화살을 맞고 아픔이 발생했다. 그 아픔을 스스로 확장해서, ‘나는 아프다’로 규정하지 마라. 자신을 해치는 길이다. 누군가 나를 아프게 할 때, 그는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아프게 할 때, 그건 어리석은 사람이다. 스스로 화살을 만들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무지가 습관이 되고, 그 습관 속에서 나는 화살 제조 전문가가 되고 있다.
삶은 우연이고 인생은 운이다. 삶은 내가 만든 운이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인연 속에 살아간다.
가난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을 때, 우리는 그 가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가난을 품고 있는 풍요’를 알아차릴 때, 가난은 초라한 것이 아니다. 가난은 결핍이고, 결핍은 뭔가를 채우는 행위로 표현된다. 돈을 버는 것은 돈을 채우는 행위고, 그것의 바탕에는 내면의 결핍이 있다. 돈을 쫓는 시간 속에 마음의 결핍은 더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기부와 헌금을 실천할 때,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달라진다. 기부는 돈을 나누는 것이고, 나누는 것은 뭔가로 채워져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 나눔이 내면을 풍요로 물들인다. 가난 속에서 봉사를 하고, 궁핍 속에서 베풂을 실천할 때, 가난은 인색이 아닌 풍요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당당한 가난은 나의 스토리가 되고, 풍족한 미래의 전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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