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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충좌돌

나는 농담처럼 몸을 다 풀어놨더니 다시 굳게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뜬금없이 아홉수 타령을 해댔다. 자신이 아홉수를 호되게 치르고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관념들을 그저 핑계라고 생각했다. 아홉수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모르게 서른이 되면 뭐가 잘 풀릴 것 같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운명이 빙산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홀로 떠돌다 결국 녹아 없어져버리는 빙산처럼 나의 삶도 시간을 부유하다 무의미하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자괴감이 밀물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잠들기를 포기하고 오래된 영화를 보았다.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삼아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왔다.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탱고 수업은 내게 첫 도전의 시작이었고 내 가슴에 열정을 심어주었다.
그녀는 자타공인 성공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해 금융회사에 연구원으로 임원까지 역임했다. 마흔이 넘어 기다리던 아이도 임신했다.
"나는 천사를 얻었고 세상은 지옥이 되었어요."
아이는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장애는 아이가 안고 있던 불치병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열여섯 살. 아이는 몸만 자랐을 뿐 신생아나 다름없었다.
"우리 아이는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는 병이에요. 그 사실을 아는 장애 학부모들은 내게 좋겠다고 말해요. 적어도 내게는 끝이 있으니까요."
나는 장애 자녀를 남겨두고 가야 하는 부모와 장애아를 먼저 보내고 남겨진 부모 중 누구의 마음이 더 아프고 슬플지를 떠올렸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그 슬픔의 농도를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30년이 지났다. 내 첫번째 친구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
서러움에 터뜨린 눈물처럼 굵은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다.
나는 출생신고를 두 달 늦게 했다. 엄마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몸이 약해 그랬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달랐다. 출산 당시 생활고에 시달렸던 엄마는 나를 보육원에 맡기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엄마는 하루만 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었다. 다음날 또 하루만 더.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보육원에 보낼 생각이 점차 사그라졌다. 그렇게 60일이 지났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
내 어머니도 가슴이 내려앉을 것처럼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지켜냈다. 그리고 장애를 판정받은 날, 엄마는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가슴을 쥐어짜며 통곡했다.
하지만 그해 가을의 내 생일날, 나는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나를 낳고 나서 60일간의 이야기를 했다. 바구니 속에 핏덩이를 넣고 보육원 앞에 내려놨다가 두 걸음을 떼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바구니를 들어올렸다 내려놓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었노라고.
"너를 지켜내서 다행이야!"
엄마가 내 등을 쓸며 말했다.
그녀도 자신의 아기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너를 낳아서 참 다행이야."
나는 축하받은 졸업식의 경험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졸업 앨범은 소포로 받았다.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까짓 졸업식이야 앞으로도 몇 번이나 있을 테니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졸업식은 차마 참석하지 못했다. 중학교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도서관의 야외 벤치에 앉아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졸업식 진행과정을 가만히 들었다. 유난히 추운 2월이었다. 두 뺨이 따끔거리게 시렸다. 손끝이 꽁꽁 얼었는데 나는 끝까지 혼자만의 졸업식을 견뎌냈다.
친구들은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이었다. 흥분과 기대, 아쉬움이 교차하는 현장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새 학기에 나는 장애인학교로 입학하기로 결정되었다. 어제까지 같은 방향을 보고 달렸던 친구들 틈에서 나만 빠져나와 이제까지 상상해본 적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옷깃 안을 파고들어왔다. 뼛속까지 시리게 추웠다.
나는 엄마가 들고 있던 부적을 가로채 박박 찢었다. 엄마가 화들짝 놀라 바닥에 뿌려진 종이쪼가리를 두 손으로 쓸어모았다. 그러고 나를 무섭게 노려봤다. 눈빛이 반 미친 사람 같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정신 나간 년!"
엄마의 주먹이 내 머리통을 쥐어박아댔다. 나는 날아오는 엄마의 팔을 턱 잡았다.
"이거 못 놔! 이 기집애야!"
엄마가 악다구니를 쓰며 몸부림쳤다.
"정신 나간 건 엄마겠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면서, 나한테 어떻게 이래!"
"야! 병신 학교 졸업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 그게 자랑거리냐고?"
내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엄마가 갑자기 자리에 풀썩 쓰러지듯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따지고 싶었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그래, 병신 학교잖아! 그러니 엄마가 더 왔어야지! 나한텐 첫 졸업식이었어. 가족 아무도 오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고. 오늘 난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럼 기대도 없었을 거 아니야!"
엄마를 향해 악을 썼다. 엄마는 컥컥 소리 내어 울었다. 할 말이 없으면 엄마는 더 크게 소리를 내며 울었다.
"창피했어!"
엄마의 고백을 듣고 나는 피가 반쯤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허탈해졌다.
‘나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구나!’
"내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도, 그곳에 내가 가는 것도 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어!"
엄마의 고백이 내 마음을 갈래갈래 찢어놨다.
나는 부모에게 부끄러운 자식이 되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그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엄마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엄마를 사랑했고 연민했지만 증오하기도 했다. 엄마의 애정을 갈구했고 그걸 드러내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러면 내 자신만 비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태롭게 관계가 유지되던 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꽃을 선물했다. 흰 국화가 영정 앞에 가득 쌓였다. 국화는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내 죄책감이었다.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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