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남자 종족과 여자 종족은 전혀 다른 종이라고 본다. 그런데 외형이 같은 인간 형태라고 이 둘을 한집에 몰아넣고 같이 살아라 하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를 인식 하고 상호 간에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미리미리 교육을 받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아무도 이런 인식이 없다.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부부간의 예의나 남녀 간 생각의 차이 등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정황을 묘사하느냐 하면 누군가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게 인생이다. 끝에 별게 없다. 심오한 깨달음이 오거나 50년 가까이 같이 살았던 사람과 마지막 인사라도 살갑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허망하게 끝이 나버린다.
그러면 사는 것이 헛되기만 했는가? 어차피 태어났으니 삶은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남자가 내게로 와서 같이 살면서 진객珍客인 아이들도 낳고, 살아가는 터전도 만들고, 사회의 일원으로 주눅들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필요 부분도 남편 덕분에 마련되어 있다.
결혼 생활에는 해피엔딩이 없지만, 인생의 끝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노쇠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왔을 때 인생의 끝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우리가 보기에 지나치게 아끼고 절약하는 게 몸에 배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우리를 보면 아이들은 또 답답한 부분들이 있겠지. 그래도 어머니가 그렇게 아껴 모아서 목돈을 만들었다가 자식들이 필요한 때 쓰라고 주면 답답해한 건 잊어버리고 좋아하기만 한다.
비싼 거라도 지금 나에게 많이 쌓여 있으면 자연히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과 모아둔 재산을 가늠해서 재산이 너무 많은 사람은 각티슈처럼 쓰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볼 만하다.
침대 옆에 둘 협탁을 살 때는 비싸고 번듯한 것을 살 뻔하다가 이제부터 사는 살림살이는 내가 죽고 난 후 아이들이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싸고 가벼운 것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자개장롱을 버릴 수밖에 없었을 때 마음이 오래 안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노인이 되면 구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살다보면 아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에 내는 세금(어머니는 친구분이 국가에서 주는 노령생계비를 지원받는 걸 시샘하더니 나중에는 세금을 내는 처지가 훨씬 떳떳하다고 말씀하셨다)과 병원비라고. 그러니 아낄 수 있는 곳에서는 아껴야 한다 하셨다.
사우나나 온탕에서 몸을 데우고 냉탕에 들어가면 어디서도 대체할 수가 없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반신욕을 하면서 목을 돌리고,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냉탕에서는 짧지만 수영도 한다. 어쨌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기대로 매일 목욕탕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보니 목욕탕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감지하고, 세상의 민심이 변하는 것도 목욕탕 사우나에서 더 잘 느낀다.
외모를 가꾸고 살기도 참 힘들구나. 대책이 없던 시대에는 늙으면 늙는 대로 사는 줄 알았는데, 늙어도 대책을 잘 세우고 돈을 들이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시대가 되고 보니 선택하기도 간단치가 않다.
세태라는 게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서울서 직장생활하는 아들 부부가 다가오는 명절에 못 올 일이 생겼다고 연락하면 못 보게 돼서 섭섭하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 잘됐다 싶단다. 가족이어도 항상 같이 살지 않는 이상 완벽한 손님이고, 손님 접대에는 부담이 많이 생긴다.
얼마 전만 해도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 어쩌고 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한해 한해 가면서 양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편 60대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엄마는 자기는 남편에게 음식물쓰레기는 절대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직접 한다며,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아주 현모양처 같아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기는 딸과 며느리에게도 음식물쓰레기는 남자들에게 맡기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내가 그러면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것은 지저분하고 천한 일이라 귀한 남자들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러니 지금은 모든 가치가 혼재되어 있고 오히려 여자들이 더 살기 어려워져가고 있는 것 같다.
목욕의 마지막 코스로 어떤 사람들은 얼굴에다 팩을 하는데, 오이, 들깻가루, 우유, 요구르트, 녹차 가루, 레몬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자신의 피부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전국 목욕탕에서 흘러나가는 물에 먹어도 좋을 음식물 성분으로 범벅된 오수가 얼마나 될지 심히 우려스럽다.
목욕탕에 가서 씻고 약간의 운동도 하고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개운해진다.
두세 시간 동안 핸드폰이나 다른 매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게 해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고 사람들 안에서 사는 이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다양한 세대를 관찰할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생각해보면 운동은 고통이고 목욕은 일종의 쾌락이었다. 온탕이나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고 찬물탕에 들어가는 시원함을 어디다 비하겠는가. 이후에 이곳의 헬스장이 폐쇄됐는데도 나는 목욕탕을 계속 다녔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어느 의사가 말하기를 자세를 항상 긴장 상태로 오래 유지하다보니까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단다. 그러니 지나치게 유난을 떨 필요는 없겠다. 다만 우리는 자세에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편한 자세로 돌아가고 싶어지니까 마음속에서 한 번씩 ‘자세를 꼿꼿하게 한다’라는 주문을 외워두는 게 좋다. 나이는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자세에서 드러난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아무도 널을 뛰지 않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대문을 허물고, 그곳에 새 이층 양옥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그 집에서 70세 무렵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84세가 될 때까지 지내시다가 자식들이 많은 서울로 옮기셨는데, 우리가 새집이라고 인식하던 그 집도 거의 50년 구옥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좋았던 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지만, 그런 날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