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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충좌돌

이 세상을 살아가며 꼭 혼자 다 해내야만 잘 사는 걸까?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만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까? 예전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레버리지’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적은 힘으로 더 큰 효과를 얻는 방식.
인간관계에서의 레버리지를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오히려 내가 단단해졌다. 인생은 혼자 완성해야 하는 퍼즐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 더 멀리 가는 것도, 내 에너지를 지키는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결심이 빨랐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누군가가 당신의 일을 멋지다고 말하며, 당신처럼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해온 일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니까.
결국 중요한 건 ‘검증된 사람’, 즉 믿을 수 있고 직접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 되는 일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원리를, 나는 제네바에서 작은 용기와 태도로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욕망하고, 내 손으로 직접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여의치 않으면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시간이 있었다. 삶이 풍요롭게 성장하는 데 필수 불가결했던 시간들. 하지만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했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조금 더 단순하게 만들까. 이왕이면 힘 안 들이고 편하게 살고 싶은 베짱이과에 속하는 나였다. 적게 고민하고, 적게 부딪히고, 덜 지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그러려면 한계가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아껴야 했다.
프랑스어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몇 번의 체험 수업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여덟 명 남짓한 학생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었고, 각자 다른 이유와 문화적 배경으로 언어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은 나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위축되진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빠른 속도로 프랑스어로 설명을 이어갔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진도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딘가 문법이 막히고 발음이 낯설어 자꾸 진도를 놓쳤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손을 들고 다시 한번 설명을 부탁했다. 그때였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어떤 이가 매번 몸을 돌려 내게 대신 답을 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행동이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 반복되자, 그것이 친절이 아니라 ‘비웃음에 가까운 배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엔 그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을 쏟는 동안 내 에너지가 새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잘 알면서도, 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그것도 나에게 처음부터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혹시 나도 모르게 인종차별이라는 폭력에 무뎌진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마음 한가운데를 스쳤다. 그냥 넘기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또 마주했을 때에도 ‘별일 아니야’라며 넘겨버릴 것 같아서, 이번엔 다르게 행동하기로 했다.

다음 날, 그가 또 한 번 내 쪽을 돌아보며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을 때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난 선생님에게 물었지, 너한테 묻지 않았어."

그는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나 또한 더 이상의 논쟁을 이어갈 이유는 없었다.
더 이상 그 친구에게 ‘나는 네가 생각하는 만큼 얕잡아볼 사람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노력하지 않으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애초부터 내 존재를 가볍게 여긴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려는 일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 학원에는 더 나가지 않았다. 등록하기 전이었기에 별다른 절차 없이 쉽게 그만둘 수 있었다. 수업 방식이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달랐던 것도 있지만, 어쩌면 그와의 껄끄러운 관계가 그만둔 또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교실을 나설 때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싸워서 이긴 것도, 정의를 실현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단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구분한 것,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이건 냉정한 태도가 아니라 삶의 효율에 관한 문제다. 감정도 에너지고, 에너지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으니까.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이 쓸모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내는 시행착오와 더불어,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버리는 태도도 습관으로 익혀야 한다. 괜히 남의 마음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해보려는 그 시도 자체가 이미 불필요하다. 사실 이건 단순히 인간관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 전체를 가볍게 만들어 주는 아주 유용한 태도이기도 하다. 어떤 고민과 걱정이 생긴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이 고민이 정말 내 시간을 들일 만큼, 내 에너지를 쓸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흘려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괜히 그런 일에 힘을 쏟아 정작 중요한 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사실 그렇다. 친구든, 한 번 보고 끝날 사람과의 관계든, 어쩌면 남자와의 관계까지도. 내가 살아가는 것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웬만한 건 그냥 흘려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 감정적 에너지를 괜히 소모하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힘을 빼는 게 맞을 때도 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느라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지 말 것. 그러니까 쓸데없는 것에 괜히 내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내 입에서 나온 잔소리가, 사실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내 에너지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애초부터 쓸데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일, 그게 인생에서 가장 효율적인 힘의 사용법이라 믿는다. 종종 세상은 그런 나를 게으르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지치게 하지 않고, 더 오래 나답게 살아남게 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런데 허무할 정도로 최고의 답변은 아예 보지 않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신경도 덜 쓰이기 마련이니까. 그걸 굳이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 신경 에너지를 갉아먹게 만들 환경이라고 생각된다면 얼른 빠져나오라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머리로 노력할 것도 없으며, 마음을 애써 컨트롤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몸을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생각하자. 당신이 놓아버리면 된다. 여러 가지의 다른 기회와 대안을 당신의 행동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원하는 마음이 아무리 절실하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이 무리하게 애쓰고 쉽게 지쳐도 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자. 가볍고 느슨하게. 간절히 원할수록 어긋나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가까울수록 멀어진다. 당장 내일, 올해 인생이 끝날 것도 아닌데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절박함은 언제나 위태로운 선택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기회, 또 다른 대안은 언제든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혹자는 되물을 수 있다. 말은 쉽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 옳다. 1단계가 아무리 명확해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놔두라는 말은 듣기에는 참 쉬운데, 정작 몸은 그렇게 쉽게 놓아지질 않는다. 이 대목에서 필요한 수행은 ‘내려놓음’이 아니라 ‘보지 않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내가 신경 쓰일 장면을 보지 않는 것이다. 신경 쓰이는 곳에서 나오면 된다.
‘될 일은 어떻게든 되고,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말처럼,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두었을 때 오히려 그것이 더 가까워지는 경험들을 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안간힘을 쓴 일은 오히려 멀어지고, 어쩐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은 예상치 못하게 스르륵 이루어지곤 하는 걸 보면 ‘원하는 것일수록 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연연할수록 멀어지고, 초연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냥 가볍게 넘기고 놔두었을 뿐인데 상대는 오히려 그게 존중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아, 날 믿어주는구나’ 하고 말이다.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두는 그 태도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떤 일이든 내 눈앞에 놓였을 때 한 번쯤 묻는다. 이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냥 흘러가게 둘 수밖에 없는 일인지. 통제가 안 되는 일이라면 애써 붙잡지 않는다. 놓아버린다. 그래도 괜찮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남들이 이미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간절해지는 마음. 그 감정은 어쩌면 나의 진짜 욕망이 아니라, 남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타이밍에 휘둘리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간절할수록 내려놓아야 한다. 내 삶의 속도와 타이밍은 결국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나를 살리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무조건 애써 멀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무소유의 삶을 완벽하게 실천할 수는 없다. 다만 무언가를 바라는 데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쓰지 말고 그 에너지를 아껴 더 소중한 데 활용해보자는 이야기다. 가볍게, 가볍게. 원하는 것도 가볍게. 포기하는 것도 가볍게. 바라는 것을 중심에 두되, 적절한 크기로만. 그리고 다른 것에도 에너지를 나누어주면서. 그렇게 여유롭게, 유연하게.
답은 늘 간단하다. 나오면 된다. 버리면 된다. 멀어지면 된다.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걸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그다음은 아주 단순하다. 거기서 나오는 것. 누가 당신을 거기에 붙잡아두고 있는 게 아니다. 보기 싫은 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운동화 끈 조여매고 한강변으로 나가 시속 5킬로미터로 달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오자. 버리자. 당신은 아름다운 것만 있는 곳에서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세상엔 생각보다 많은 곳이 있고, 당신은 그중에서 좀 더 편안한 곳을 고를 수 있다.
굳이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는 일. 괜히 마음의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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