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은 방어적이었던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다. 또한 여러 공소사실 중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해야 유죄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다들 안 된다고 하니 불안해했다. 피해자가 다수였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었기에 부담감도 있었을 거다. 피해자들이 다수인 사건에서는 처리에 대한 피해자들의 의견이 많이 갈리는데, 그 갈등을 수습하고 봉합하는 역할을 일부 피해자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H씨와 J씨는 그런 역할을 맡아 수사 과정에서부터 줄곧 다른 피해자들을 독려하며 재판까지 끌고 왔기에 많이 지친 상태였다.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다. 버거워서 다 던져버리고 숨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싸움을 선택했다. 내가 할 일은 그 선택이 최대한 그들의 바람대로 되도록 조력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등장하는 피해 영상을 보며 그 영상 속 인물이 본인임을 설명하고, 해당 영상이 어떤 식으로 편집되었는지 프레임별로 잘라 분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을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수사 과정, 아니 최소한 1심에서 검사가 영상 속 인물이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고 그 영상이 편집본임을 상세히 분석해 입증했다면 피해자가 이런 추가적인 고통을 받았겠는가?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물증까지 확보했던 건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겠는가? 왜 피해자가 입증까지 해야 하는가? 물증 확보가 가능한 디지털 성범죄조차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떤 피해자가 사법 시스템을 선택하려 하겠는가?
피해자들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연대나 지지기반이 없는 피해자들은 과연 사법 시스템에서 온전히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가해자의 범행은 과거에 있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에 있다." H씨가 쓴 탄원서 내용의 일부다
밝고 찬란한 그의 미소가 좋으면서도 지난 시간이 떠올라 마음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올랐다. H씨는 자신이 싸움을 하던 그 시간은 결코 ‘공백’이 아니었다고, 의미 없이 날리는 시간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싸움이 온전히 종결된 것도 아니지만, 그는 하나하나 자신의 삶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또 다른 싸움을 할지 논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H씨와 J씨가 이 모든 과정을 복기하느라 고통스러울 것임에도 나와 계속 연락하는 이유, 인터뷰에 응하고 사례로 언급되는 것을 허락하는 이유는, H씨가 말하듯 피해자들이 싸운 시간이 ‘공백’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그래, 나는 이런 피해자들의 마음을 안고 연대한다.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